伝統文化

 
 
 日の丸は元々  琉球王国が  唐へ行く  朝貢貿易船舶の旗(図柄)だった.
日本人たちがよく紹介するこの絵に隠された秘密だ. 元々は日本の国旗ではなかった.
 
その後  16 世紀にサツマ(薩摩)に侵略の以後には  サツマ番(回)の船舶表紙として使われた..
 よほど中途半端な来由の旗
 

 

 明治時代に, 国旗のデザインに  サツマ(薩摩)で, 琉球王国の旗を提示して,  現在の日の丸に採用されたと言う.

 

琉球王国の国旗使用

 

 

 

日本   文字   祈願   ^^

http://dugok.x-y.net/kor-his/pw/panbiyang-wonhoy.htm

 

口訣学会, ガックピル発見小林教授に謝将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208634§ion_id=106&menu_id=106  

 


 

新羅 文献で kana 似ている文字” 日本言論集中 報道 

 

 

 

 

▲写真説明 : 新羅 人が筆写したことで明かされた継ぎ紙模様の ‘判比量論 ’.その間日本では日本人が 新羅に行って使って来たことで見て重要文化財(宝物級)と指定した.

 

 

 


1200余年の前に 新羅 人によって作られて日本列島に渡った一冊の継ぎ紙仏経が日本 kana 文字の起源を明らかにしてくれる鍵に浮び上がっている.

日本言論たちは 3日その間日本人が引き写して来たことに推定された 元曉大師の ‘(判比量論)が 新羅で書かれた文書であり, 日本仮タカや文字が韓国から越えて来た可能性が大きいという小林Yoshinori(小林芳規) 教授の主張を関心あるように 報道 した.

東京新聞はこの日Fujimoto(藤本幸夫) 富山大学教授の言葉を引用, “漢字を読む補助手段としての片仮名の原型が韓国にあった可能性はある”と “新羅の文献で片仮名に似ている文字が発見されたことは貴重な事実”と評価した. 前日京都で開かれた conference 会見場でも 10人余りの日本記者たちは ‘仮タカや韓国由来書を’に対してのべつ幕無しに質問をこぼし出した.

事実, 今度に 新羅の文書で確認された ‘判比量論はその間日本人が 新羅に行って引き写して来たことで推測になって来た. 日本が重要文化財と指定したこともそのためだ. しかし, 誤打だから大学のMiyazaki健司(宮崎健司) 教授が 97年紙の 紙質, そして 当時情況をよく見る時 新羅で作ったのではないかと言う疑問を申し立て始めたし, 小林教授は今度に 新羅 人のガックピルを確認することでこの主張を裏付けたのだ.

‘判比量論では数十種類のガックピルが発見された. 特に漢字発音を読むための ‘文章符号’のように見えるガックピルが多数発見されたが, これは以後日本で発見されるガックピル文章符号とは全然違った模様のものなどだ. 日本人が引き写した本なら 新羅 スタイル ガックピルまで引き写す 必要がないという論理だ.

日本仮タカや文字の起源問題と関連,  気を引くことは漢字の発音を表示したように見える符号二つだ. 一番目は根(bboori) (根) 横に使われた ‘マリ’という字だ. この字の中 ‘マ’は (部)の右側部(右阜傍) 部分を減らしたことで ‘リ’は ‘(利)’を減らしたようだと小林教授は推測した. このなかに  ‘リ’は現代日本片仮名でも ‘里’で読む. ‘boori’と書いたことに推測されるという主張だ. また  ‘(共)’ 横に書かれた ‘(宮)’という文字だ.

 

小林教授は “三国史記に見れば 元曉せりふの息子であるソルチォングが仏経を 新羅 言語で読んだという文があるのに, ガックピルの発見されながらこれがソルチォングが 新羅 言語でガックピルを使用, 仏経を解いたことだという意味だと推測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と付け加えた.

もちろん発見されたガックピルが本当に ‘くちばし’と読んだことか, また本当に片仮名の起源かはまだわからないということが小林教授の愼重な立場だ. 特に現代の単語 ‘bboori’は 15世紀の時までにしても ‘(boolhwee’と読ませたから, 果してこの字が ‘boori’というのが妥当なのかはまだ解けない問題という説明だ. また 新羅 時代の言語を推測するにも実在的な例がすぎるほど少ないという のも限界だと小林教授は自ら指摘した.

 

小林教授の主張に対して国内学者たちも敏感な反応を見せている. 安ビョンヒソウル大名誉教授は “根 (根)の 15世紀発音は ‘boolhwee’であるから 新羅 時代に ‘boori’で読んだ可能性はなくて, ‘マ¥”を (部)のズルイムマルで見るにも大変だ”と言った. 南風県韓国口訣学会会長は “新羅 時代に根(bboori)を ‘boori’で読んだ可能性はないが, ‘マ¥”を (部)のズルイムマルで使った実際場合は何回も出る”と “ガックピル研究の権威者である小林教授が新しい資料発掘を通じて日本片仮名の 新羅 伝来説を主張したことはとてもおもしろくて価値がある”と言った. 一方美術史学者である雨降り部屋梨花女大教授は “新聞に紹介された ‘判比量論’の筆記体が非常に活逹で立派だ”と “新羅 人の筆文字研究にも非常に貴重な資料”で評価した.

 

( 京都=崔洽特派員  ) ( 金基哲記者 )

◆小林教授は/ ガックピル権威者, 酸っぱいか-高麗仏経にも跡発見

小林Yoshinori(小林芳規・73) 教授は 1961年日本で最初でガックピル文献を捜し出した東アジアガックピル研究の権威者だ. 日本学者としては最高の栄誉である ’(恩賜賞), (日本学士院賞)を受けたりした.

小林教授は最初日本文献の原文漢字横に kanaとともに各ピロー刻まれて漢字発音や翻訳手順を知らせてくれる役目をたいてい (訓点)が日本の独自的発明だと主張して来た. これが次第に kana 文字で発展したというのだ. しかし 2000年7月ソウルソングアムゴで博物館の 新羅・高麗仏経でも点と符号みたいなことのガックピル跡を初めて発見, 韓国で伝わった可能性が高いと立場を変えた. 2000年末には私たち文献に各ピロー刻まれた (口訣)が日本ガーナの源流である可能性が高いという主張まで広げた. 日本 kanaの韓半島来由説を扱った小林教授の主張は 2000年 11月日本公営放送人 NHK メインニュースで比重ありげに報道された以来今まで彼の研究活動を追跡する取材チームが構成されているほどだと言う. 東京文理科大学を卒業, ‘ガックピル文献の国語学籍研究’ ‘ガックピルが案内する世界’ などの著書がある. ( 金基哲記者 )

 

[日本宝物 ‘判比量論’ 筆写本] 統一 新羅 文書で確認
 

 


 

 

 

▲写真説明 : 根 (根) 横に各ピロー刻まれた ‘マリ’. ‘リ’は現在の片仮名 ‘里’字と一致すると言うのが小林教授主張だ.

 

日本誤打だから(大谷) 大学が所蔵している 7世紀末統一 新羅 時代元曉大師の著述 ‘判比量論で 新羅 時代言語と漢字発音が書かれている (角筆)が発見された. その間日本では ‘パンビヤングロンが日本人僧侶が 新羅に行って筆写して来たことで見て日本の重要文化財と指定して来たが 新羅の物なのが確認されることでこの文書は韓国人著述として現存する一番古いこととして落ち着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 また ‘ガックピルの跡には日本衣架タカや(katakana) 文字に似ている模様の読音が走っていて, 片仮名が韓国で来由になった可能性が高いという主張が申し立てられた.

韓国, 中国, 日本 ガックピル研究の権威者である日本ドクシマ大学小林Yoshinori(小林芳規) 教授は 2日京都誤打だから大学で記者会見を持って “7世紀末筆写されたことに推定される 新羅 元曉大師の ‘(判比量論)’ 筆写本でさまざまのガックピルを確認した”と明らかにした. これらガックピルは当時漢字発音が書かれていて 新羅 時代言語理解に決定的だけではなく, 特に根 ‘(根)’字横に片仮名を連想するようにする ‘マリ’というガックピル文字が書かれている のを含めて 片仮名の起源を推測することができる資料になると小林教授は主張した.

継ぎ紙になった 判比量論は元曉大師が 671年編纂したことで, 古代 Indiaの論理学 (因明)の形式を祈って 唯識を説法した著述. 7世紀末‾8世紀初めに 新羅に留学した日本僧侶はきましょう(審祥)が持って来て 740年皇后に捧げた以来日本天皇家家 持っていた. 

小林教授はガックピルの内容が韓国語で漢字発音も韓国(新羅) スタイルという の, 筆写した後墨汁が乾く前にすぐガックピルを刻んで入れた跡がある の, 皇后は受けるやいなや ‘蔵書という意味のはんこを押したがこの道場はガックピルの上に撮れていることで確認されたことで  見る時 新羅インが使った事に違いないと主張した.

朝鮮日報 2002. 4. 3 ( 京都(京都)=崔洽特派員

 

[ガックピルと言う(のは)]

古代文献で象牙や尖ったような竹みたいなことを使用, 漢字横に発音や解釈を知らせてくれる目的に刻んで入れた一種の柱石.

終りに紙を押してくぼめるようにして文字と符号, 絵を表示したから押された跡だけあるだけ色が現われなくて昔の文献専門学者たちにまでもその間ほとんど知られなかった.

小林教授は 2000年ソングアムゴで博物館に所長中の 11世紀高麗早版大蔵経でガックピル跡を初めて捜し出すことで国内文献にもガックピルがあるという事実を初めて明らかにしたし, 日本 kana 文字の韓半島 来由を主張するようになった.

 

 


 

 
 
 
 

 

 

 

 

 

 

韓国 日本の 言語比較結果, 日本語の起源は韓国語

  
  韓国と日本の固有語  1300個の音を比べた結果を基礎で, 2個の言語の起源は同じだと言う本 「あなたは韓国人がすなわち発売される. 日本人言語学者ShimizuKiyoshi(63) オーストリア空の大学教授と九州産業大学の韓国語講師朴沒味さんの共同著作だ.

   2人は恩師と弟子の関係だ. アフリカ言語研究の権威者だったShimizu教授が, 30年間の海外生活を終わらせて 94年に熊本大学言語学との主任教授になった時, 朴沒味さんは大学院に在籍して, 両国の言語の関連性に対して研究していた. Shimizu教授は, 彼を指導しながら 「日本語の起源探し」に魅かれて 02年には教授席を捨てて研究に取り組んだ.

   彼らは, 寝ることが言語の移り変わり過程に対しても変化しにくいことに注目して, 2個の言語を比べた. 例えば, 韓国語の (nac, 顔)と日本語の 「身幅(夏) 句」(natuku)を対応させる手法を取った.

   韓国語を 「半島韓国語」, 日本語を 「列島韓国語だと呼んで 「韓国語比較言語学の分野を開拓している 2人は, 今後 「韓国日本 固有語辞書」( 約 5000の語彙を比較) 編集・出版する計画だ.

http://japanese.joins.com/article/article.php?aid=55456&servcode=700§code=700


 

 

 

NEW YORK TIMES  日本語の起源は高句麗言語

 

全世界の主要語族の中一部は非常に広い地域に分布されていて一部は極めて小さな地域に分布されているのにこれは農耕生活と関連があり現代日本語の根が高句麗言語という学説が申し立てられたとニューヨークタイムスが 6日報道した.
アメリカ UCLAの ゼロドダイヤモンド博士とオーストラリア国立大学(ANU) ピーターベルウッド博士は ずいぶん前から農業の発見がインド-ヨーロッパ語族の拡散を説明するのに利用されて来たと伝えられこの理論を適用して 15個重要語族の拡散現象を説明した論文を 4月25日付けサイエンスに発表した.
が論文によれば人類が狩猟及び採集生活をする時には 扶養(supporting) 能力が大きくなくて人口数が少なかったが農業の発見された後人口が膨脹し始めながら農耕人々が使う言語が狩猟及び採集生活をした周辺人類の言語たちを取り替え始めた.
が理論によると特定地域で使われる言語は特定農作物を栽培した農夫たちの拡散と連関があり農夫たちが自分たちが掌握した地域で狩猟及び採集人々と血を交ぜて遺伝子がまじることはできても言語はまじ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指摘した.

 


農業と 語族拡散の関係を明確に見せてくれる のは 1千436個の下位言語を従えたニジェール-コンゴ語族(あるいは半透語族)で見つけることができるのに西の方アフリカでヤムを栽培して半透語を使う人々は今から 5千年戦南側と東に広がって行き始めてアフリカ大陸の 3分の 1にのぼる地域で拡散して狩猟.採集人々の言語だったコイシャン言語を半透語で代替させた.


中国の農耕地帯も呉ストロー-アジア語族とタイ 語族及び一枚 語族 3個重要語族の発生地で北米メキシコでとうもろこしと豆を栽培した農耕人々は北に広げて行きながら自分たちが使ったウト-アズテック語族を拡散させた.


が論文は引き続き 日本語の根と関連, 日本語はB.C. 400年頃韓半島で日本南部九州島に渡って来て米農業を北部地域で拡散させた農耕人々の言語で来由になったという 仮説を支持した.
論文は現代日本語は韓国語と韓半島には過去 三国時代があったし 三国も自主的な言語をそれぞれ持っていたと 指摘して 現在の韓国語は 新羅語で, 日本語は高句麗語で由来した可能性が あると指摘した.
ダイヤモンド博士はイヌイト族の例えて農業がすべての言語を拡散させた要因ではないが大部分の主要語族を広い地域で拡散させる寄与したことは農業だったと言った

 
 
 
未開な列島を開拓した韓国
 
言語は基本ですね


일본의 정체성

 
 
 일장기는 원래  류큐 왕국이  당나라에 가는  조공 무역 선박의 깃발(圖柄)이었다.
일본인들이 자주 소개하는 이 그림에 숨겨진 비밀이다. 원래는 일본의 국기가 아니었다.
 
그후  16 세기에 사츠마(薩摩)에 침략의 이후에는  사츠마 번의 선박 표지로서 사용되었다..
 상당히 어중간한 유래의 깃발
 
 메이지 시대에, 국기의 디자인에  사츠마(薩摩)에서, 류큐 왕국의 깃발을 제시해,  현재의 일장기에 채용 되었다고 말한다.

 

류큐 왕국의 국기 사용

 

 

 

일본   문자   기원   ^^

http://dugok.x-y.net/kor-his/pw/panbiyang-wonhoy.htm

 

구결학회, 각필 발견 고바야시 교수에 감사패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208634&section_id=106&menu_id=106  

 


 

신라 문헌에서 kana 닮은 문자” 일본 언론 집중 報道 

 

 

 

▲사진설명 : 신라 사람이 필사한 것으로 밝혀진 두루마리 모양의 ‘判比量論 ’.그동안 일본에선 일본인이 신라에 가서 써온 것으로 보고 중요 문화재(보물급)로 지정했다.

 

 


1200여년 전에 신라 사람에 의해 만들어져 일본열도에 건너갔던 한권의 두루마리 불경이 일본 kana 문자의 기원을 밝혀줄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3일 그동안 일본인이 베껴왔을 것으로 추정되던 원효대사의 ‘(判比量論)이 신라에서 적힌 문서이며, 일본 가타카나 문자가 한국에서 넘어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교수의 주장을 관심있게 報道 했다.

도쿄 신문은 이날 후지모토(藤本幸夫) 도야마 대학 교수의 말을 인용, “한자를 읽는 보조 수단으로서의 가타카나의 원형이 한국에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며 “신라의 문헌에서 가타카나와 비슷한 문자가 발견된 것은 귀중한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전날 교토에서 열린 conference 회견장에서도 10여명의 일본 기자들은 ‘가타카나 한국 유래설’에 대해 쉴새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사실, 이번에 신라의 문서로 확인된 ‘判比量論은 그동안 일본인이 신라에 가서 베껴온 것으로 추측 되어 왔다. 일본이 중요문화재로 지정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오타니 대학의 미야자키 겐지(宮崎健司) 교수가 97년 종이의 紙質, 그리고 당시 정황을 살펴볼 때 신라에서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고바야시 교수는 이번에 신라 사람의 각필을 확인함으로써 이 주장을 뒷받침한 것이다.

‘判比量論에서는 수십가지의 각필이 발견됐다. 특히 한자 발음을 읽기 위한 ‘문장 부호’처럼 생긴 각필이 다수 발견됐는데, 이것은 이후 일본에서 발견되는 각필 문장 부호와는 전혀 다른 모양의 것들이다. 일본인이 베낀 책이라면 신라 스타일 각필까지 베낄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일본 가타카나 문자의 기원 문제와 관련,  관심을 끄는 것은 한자의 발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이는 부호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뿌리(bboori) (根) 옆에 쓰인 ‘マリ’라는 글자다. 이 글자 가운데 ‘マ’는 (部)의 오른쪽 부(우부방) 부분을 줄인 것이며 ‘リ’는 ‘(利)’를 줄인 것 같다고 고바야시 교수는 추측했다. 이 가운데  ‘リ’는 현대 일본 가타카나에서도 ‘리’로 읽는다. ‘boori’라고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는 주장이다. 또  ‘(共)’ 옆에 적힌 ‘(宮)’이라는 문자이다.

고바야시 교수는 “삼국사기에 보면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이 불경을 신라 언어로 읽었다는 글이 있는데, 각필의 발견되면서 이것이 설총이 신라 언어로 각필을 사용, 불경을 풀이한 것이라는 뜻이라고 추측할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물론 발견된 각필이 정말로 ‘부리’라고 읽은 것인지, 또 정말로 가타카나의 기원인지는 아직 알수 없다는 것이 고바야시 교수의 신중한 입장이다. 특히 현대의 단어 ‘bboori’는 15세기 때까지만 하더라도 ‘(boolhwee’라고 읽혔기 때문에, 과연 이 글자가 ‘boori’라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라는 설명이다. 또 신라 시대의 언어를 추측하기에도 실제적인 예가 지나치게 적다는 것 역시 한계라고 고바야시 교수는 스스로 지적했다.

고바야시 교수의 주장에 대해 국내 학자들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병희 서울대 명예 교수는 “뿌리 (根)의 15세기 발음은 ‘boolhwee’이기 때문에 신라 시대에 ‘boori’로 읽었을 가능성은 없고, ‘マ"를 (部)의 줄임말로 보기에도 힘들다”라고 말했다. 남풍현 한국 구결 학회 회장은 “신라 시대에 뿌리(bboori)를 ‘boori’로 읽었을 가능성은 없지만, ‘マ"를 (部)의 줄임말로 쓴 실제 경우는 여러 차례 나온다”며 “각필 연구의 권위자인 고바야시 교수가 새로운 자료 발굴을 통해 일본 가타카나의 신라 전래설을 주장한 것은 매우 흥미롭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술 사학자인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는 “신문에 소개된 ‘判比量論’의 필체가 매우 활달하고 훌륭하다”며 “신라 사람의 붓글씨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했다.

( 교토=崔洽특파원  ) ( 金基哲기자 )

◆고바야시 교수는/ 각필 권위자, 신가-고려 불경서도 흔적 발견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73) 교수는 1961년 일본에서 최초로 각필 문헌을 찾아낸 동아시아 각필 연구의 권위자다. 일본 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恩賜賞), (日本學士院賞)을 받기도 했다.

고바야시 교수는 당초 일본 문헌의 원문 한자 옆에 kana와 함께 각필로 새겨져 한자 발음이나 번역 순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 (訓点)이 일본의 독자적 발명이라고 주장해왔다. 이것이 점차 kana 문자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7월 서울 성암고서 박물관의 신라·고려 불경에서도 점과 부호 같은 것의 각필 흔적을 처음으로 발견, 한국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장을 바꿨다. 2000년말에는 우리 문헌에 각필로 새겨진 (口訣)이 일본 가나의 원류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일본 kana의 한반도 유래설을 다룬 고바야시 교수의 주장은 2000년 11월 일본 공영 방송인 NHK 메인 뉴스에서 비중있게 보도된 이래 지금까지 그의 연구 활동을 추적하는 취재팀이 구성돼 있을 정도라고 한다. 도쿄 문리과 대학을 졸업, ‘각필 문헌의 국어학적 연구’ ‘각필이 안내하는 세계’ 등의 저서가 있다. ( 金基哲기자 )

 

[일본 보물 ‘判比量論’ 필사본] 통일 신라 문서로 확인
 


 

 

 

▲사진설명 : 뿌리 (根) 옆에 각필로 새겨진 ‘マリ’. ‘リ’는 현재의 가타카나 ‘리’글자와 일치한다는 게 고바야시 교수 주장이다.

일본 오타니(大谷) 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7세기말 통일 신라 시대 원효대사의 저술 ‘判比量論에서 신라 시대 언어와 한자 발음이 적혀 있는 (角筆)이 발견됐다. 그동안 일본에선 ‘판비양론이 일본인 승려가 신라에 가서 필사해 온 것으로 보고 일본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해 왔으나 신라의 것임이 확인됨으로써 이 문서는 한국인 저술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자리잡을수 있게 됐다. 또 ‘각필의 흔적에는 일본의가타카나(katakana) 문자와 비슷한 모양의 독음이 달려있어, 가타카나가 한국에서 유래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 중국, 일본 각필 연구의 권위자인 일본 도쿠시마 대학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교수는 2일 교토 오타니 대학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7세기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원효대사의 ‘(判比量論)’ 필사본에서 여러 가지의 각필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이들 각필은 당시 한자 발음이 적혀 있어서 신라 시대 언어 이해에 결정적일뿐만 아니라, 특히 뿌리 ‘(根)’글자 옆에 가타카나를 연상하게 하는 ‘マリ’라는 각필 문자가 적혀 있는 것을 비롯하여 가타카나의 기원을 추측할수 있는 자료가 된다고 고바야시 교수는 주장했다.

두루마리로 된 判比量論은 원효대사가 671년 편찬한 것으로, 고대 India의 논리학 (因明)의 형식을 빌어 唯識을 설법한 저술. 7세기말~8세기초에 신라에 유학했던 일본 승려 신쇼(審祥)가 가져와 740년 황후에게 바친 이래 일본 천황가가 갖고 있었다. 

고바야시 교수는 각필의 내용이 한국어이고 한자 발음도 한국(신라) 스타일이라는 것, 필사한 후 먹물이 마르기 전에 바로 각필을 새겨넣은 흔적이 있는 것, 황후는 받자마자 ‘장서라는 의미의 도장을 찍었는데 이 도장은 각필 위에 찍혀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으로  볼때 신라인이 쓴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2002. 4. 3 ( 京都(교토)=崔洽특파원

 

[각필이란]

고대 문헌에서 상아나 뾰족한 대나무 같은 것을 사용, 한자 옆에 발음이나 해석을 알려주는 목적으로 새겨넣은 일종의 주석.

끝으로 종이를 눌러서 패이게 해 문자와 부호, 그림을 표시했기 때문에 눌린 흔적만 있을 뿐 색깔이 드러나지 않아 옛 문헌 전문 학자들에게까지도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고바야시 교수는 2000년 성암고서 박물관에 소장중인 11세기 고려 초조대장경에서 각필 흔적을 처음 찾아냄으로써 국내 문헌에도 각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혔고, 일본 kana 문자의 한반도 유래를 주장하게 됐다.

 

 


 
 
 
 
 

 

 

 

 

 

한국 일본의 언어 비교 결과, 일본어의 기원은 한국어

  
  한국과 일본의 고유어  1300개의 소리를 비교한 결과를 기초로, 2개의 언어의 기원은 같다고 하는 책 「당신은 한국인이 곧 발매된다. 일본인 언어 학자 시미즈키요시(63) 오스트리아 빈 대학 교수와 큐슈 산업 대학의 한국어 강사 박몰미씨의 공동 저작이다.

   2명은 은사와 제자의 관계다. 아프리카 언어 연구의 권위자였던 시미즈 교수가, 30년간의 해외 생활을 끝내 94년에 쿠마모토 대학 언어학과의 주임 교수가 되었을 때, 박몰미씨는 대학원에 재적해, 양국의 언어의 관련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시미즈 교수는, 그를 지도하면서 「일본어의 기원 찾기」에 매료되어 02년에는 교수 자리를 버려 연구에 몰두했다.

   그들은, 자음이 언어의 변천 과정에 대해도 변화하기 어려운 것에 주목해, 2개의 언어를 비교했다. 예를 들면, 한국어의 (nac, 얼굴)과 일본어의 「품(여름) 구」(natuku)을 대응시키는 수법을 취했다.

   한국어를 「반도 한국어」, 일본어를 「열도 한국어라고 불러 「한국어 비교 언어학의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2명은, 향후 「한국 일본 고유어 사전」( 약 5000의 어휘를 비교) 편집·출판할 계획이다.

http://japanese.joins.com/article/article.php?aid=55456&servcode=700&sectcode=700


 

 

 

NEW YORK TIMES " 일본어의 기원은 고구려 언어"

 

전세계의 주요 어족 가운데 일부는 매우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일부는 극히 작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이는 농경 생활과 관련이 있으며 현대 일본어의 뿌리가 고구려 언어라는 학설이 제기되었다고 뉴욕 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미국 UCLA의 제러드 다이아몬드 박사와 호주 국립 대학(ANU) 피터 벨우드 박사는 오래전부터 농업의 발견이 인도-유럽 어족의 확산을 설명하는데 이용되어 왔다고 전하고 이 이론을 적용해 15개 주요 어족의 확산 현상을 설명한 논문을 4월25일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인류가 수렵 및 채집 생활을 할때에는 부양(supporting) 능력이 크지 못해 인구수가 적었지만 농업이 발견된 후에 인구가 팽창하기 시작하면서 농경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수렵 및 채집 생활을 하던 주변 인류의 언어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특정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특정 농작물을 재배하던 농부들의 확산과 연관이 있으며 농부들이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서 수렵 및 채집 사람들과 피를 섞어 유전자가 섞일수는 있어도 언어는 섞일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농업과 어족 확산의 관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은 1천436개의 하위 언어를 거느린 니제르-콩고 어족(혹은 반투어족)에서 발견할수 있는데 서쪽 아프리카에서 얌을 재배하며 반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지금으로부터 5천년전 남쪽과 동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해 아프리카 대륙의 3분의 1에 이르는 지역으로 확산돼 수렵.채집 사람들의 언어였던 코이샨 언어를 반투어로 대체시켰다.


중국의 농경 지대 역시 오스트로-아시아 어족과 타이 어족 및 한장 어족 3개 주요 어족의 발생지이며 북미 멕시코에서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던 농경 사람들은 북쪽으로 넓혀가면서 자신들이 사용하던 우토-아즈텍 어족을 확산시켰다.


이 논문은 이어 일본어의 뿌리와 관련, 일본어는 기원전 400년경 한반도에서 일본 남부 규슈섬으로 건너와 쌀농사를 북부 지역으로 확산시킨 농경 사람들의 언어에서 유래 되었다는 가설을 지지했다.
논문은 현대 일본어는 한국어와 한반도에는 과거 삼국 시대가 있었으며 삼국도 자체적인 언어를 각각 갖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현재의 한국어는 신라어에서, 일본어는 고구려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이누이트族의 예를 들며 농업이 모든 언어를 확산시킨 요인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주요 어족을 넓은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기여한 것은 농업이었다고 말했다

 
 
 
미개한 열도를 개척한 한국
 
언어는 기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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