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多い人々は朝鮮時代は漢字を重視してハングルを言文(諺文 : サングマルオン, グルムン)と思って卑しく思って迫害までしたと信じている. 果して世宗大王や集賢殿でハングル創製を助けた学士たちを 除いた歴代王や士大夫たちはハングルを見下してその普及を邪魔しただろうか? そう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次を通じて分かる.

 

1. 文宗のハングル創製協助 : 崔満理のハングル創製反対上訴には次のような句節がある.

数えようという功績な事ならたとえとても小さな問題だと言っても参加して決めざるを得ないが, 急ではない事にどうして時間をむだ使いして心を苦いようにするから?

ここで王世子と言う(のは)後日世宗に引き続き 5台賃金で上がった文宗を言う. 文宗は崔満理の反対上訴に言及されるほどに父王のハングル創製に積極的に協調した.

彼はたとえ 2年 3ヶ月ぶりに病死したが, <東国静雲>を陳謝の時科目で決めて, ¥”ゾングウムチォング¥”と言う(のは)言文ゴナリョン機関を運営することで父王のハングル創製維持を引き続いた.

 

2. 世祖のハングル創製協助及び普及 : 世祖は世宗大王の 二番目息子で甥である端宗の王位をさんだつした仕事で論難になる人物だ. しかし彼は父王生存時に御兄さんである文宗と一緒にハングル創製に協調したし, 王位に上がった後にもハングルの普及に対しては世宗劣らない多くの業績を残した. 彼は訓民正音諺解本の中で一番重要な解例本を刊行した. この本には 自分がハングルで作ったソックボサングゾルと父王がつけた月印千江之曲の合本である ¥”ワルインソックボ¥”いらっしゃろうとある. ハングルのために幸いであることはハングル創製に積極的に協調した鄭インジ, 申叔舟, 崔脇などが世祖の治下でも相変らず権勢を維持したということであるでしょう.

 

3. 経国大典のハングルに対する規定 : 経国大典は朝鮮時代の憲法のような権威を持った法典だ. この本には次のような規定がある.

三綱行実を言文で翻訳して, ソウルと地方の両班士大夫の一番村代表または教えるに値する人々にとって婦女子子供たちを教えて理解するようにして…以下省略

すなわち, 三綱行実を言文で翻訳しなさいと公式的に規定しているのだ.

も, 経国大典には毎年正月と 7月に実施する録事(録事) 試験に 言文を堂々な過去試験科目で明示している.

 

これはハングルの学習と普及を国家で公式的に認めたという証左だ.

 

4. 成宗, 中宗などの諺解(漢文書籍をハングルで翻訳)を通じる教化作業 : 郷薬集成房, グファングツァルですなど一般民たちに必ず必要な薬や穀食に対する書籍を国家でハングルで  翻訳して積極的に頒布した. 民たちの実生活に必要な内容をハングルで翻訳したということは, ハングルの学習を勧奨したという意味でもある.

 

5. 王と管理層の教育に必須な補助資料である言文 : 憲宗 7年 10月 11日上書に次のような言及がある.

原子価現在講演している本をすべて終えれば, 諺解に誤った所がかなりあるから  今直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これは王室や士大夫たちが漢文を学ぶ時諺解書が必須だったということを意味する.

 

6. 先祖賃金の言文校誌 : 先祖賃金は外敵につかまったとか取り入った民たちに謀を使ってすり抜けて来るのを勧める 校誌をハングルで書いて発表した.  これは国家の治者である賃金がハングルを通じて民たちに意味を伝えたことを意味する.

 

7. 国家布告文を漢文科言文で同時発表 : 霊鳥と情調は救恤(貧乏救済)に関する綸音を漢文科言文で移して 同時に発表した. たとえ民を対象で実生活に関する内容を書いた文だがハングルは漢文科ほとんど対等な姿で調整の発表に使われたことだ .

 

 

8. 外交文書で活用 : 警鐘元年(1720年) 清に使臣に間よめしゅうとめ社李イ人は王妃冊封に関する清での状況を言文で書いて調整で知らせた. 漢文で使った場合秘密保障に対するゴユックチェックから出たことだが, 言文は外交文書でまで活用されたのだ.

 

9. 王室女性たちの制度的言文使用 : 朝鮮時代訓民正音普及の一等功労者は王室女性たちだ. 王室の女性たちが発行した公式文書は言文になっている. 垂簾聴政をした備えや大王大妃の文も言文になっているから, これは言文になった文書が 朝廷の大臣たちにも大きい影響を与えたことを意味する. このような背景でヒェギョンググング洪氏の ¥”閑中録¥” 同じ名作が出ることができた.

 

10. 士大夫のハングル文学創作及びハングル作品に対する理解 : 正鉄, 朴仁老, 尹善道 などの詩調や家事作品及びキム・マンジュンの松江作品に対する高い評価などは士大夫たちの中にもハングルを漢文学習の補助道具を越して文学的に 凝った人が少なくなかったという証左だ. その他にホ・ギュンとキム・マンジュンのハングル小説も同じ事例で見られるでしょう.

 


조선시대 한글 보급

많은 사람들은 조선 시대는 한자를 중시하고 한글을 언문(諺文 : 상말언, 글문)이라 여겨 천하게 여기고 박해까지 했다고 믿고 있다. 과연 세종 대왕이나 집현전에서 한글 창제를 도운 학사들을 제외한 역대 왕이나 사대부들은 한글을 멸시하고 그 보급을 방해했을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다음을 통해 알 수 있다.

 

1. 문종의 한글 창제 협조 : 최만리의 한글창제 반대 상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세자는 공적인 일이라면 비록 아주 작은 문제라 해도 참석해서 결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급하지 않은 일에 무엇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며 마음을 쓰시게 하시옵니까?"

여기에서 세자란 훗날 세종에 이어 5대 임금으로 등극한 문종을 말한다. 문종은 최만리의 반대 상소에 언급될 정도로 부왕의 한글 창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는 비록 2년 3개월 만에 병사하였지만, <동국정운>을 진사시 과목으로 정하고, "정음청"이란 언문 고나련 기관을 운영함으로써 부왕의 한글 창제 유지를 이어 갔다.

 

2. 세조의 한글 창제 협조 및 보급 : 세조는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로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일로 논란이 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부왕 생존 시에 형님인 문종과 함께 한글 창제에 협조했고, 왕위에 오른 뒤에도 한글의 보급에 대해서는 세종 못지 않은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훈민정음 언해본 중 가장 중요한 해례본을 간행했다. 이 책에는 자신이 한글로 지은 석보상절과 부왕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의 합본인 "월인석보"가 실려 있다. 한글을 위해서 다행인 것은 한글 창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정인지, 신숙주, 최항 등이 세조의 치하에서도 여전히 권세를 유지하였다는 것일 것이다.

 

3. 경국대전의 한글에 대한 규정 : 경국대전은 조선시대의 헌법과 같은 권위를 가진 법전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삼강행실을 언문으로 번역하여, 서울과 지방의 양반 사대부의 가장 마을대표 또는 가르칠 만한 사람들로 하여금 부녀자 어린이들을 가르쳐 이해하게 하고…이하 생략"

즉, 삼강행실을 언문으로 번역하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국대전에는 매년 정월과 7월에 실시하는 녹사(錄事) 시험에 언문을 당당한 과거 시험 과목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한글의 학습과 보급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증좌이다.

 

4. 성종, 중종 등의 언해(한문 서적을 한글로 번역)를 통한 교화 작업 : 향약집성방, 구황촬요 등 일반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약이나 곡식에 대한 서적을 국가에서 한글로  번역하여 적극적으로 반포했다. 백성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내용들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것은, 한글의 학습을 권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5. 왕과 관리층의 교육에 필수적인 보조 자료인 언문 : 헌종 7년 10월 11일 상소문에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원자가 현재 강독하고 있는 책을 다 마치면, 언해에 잘못된 곳이 꽤 있으니  지금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한문을 배울 때 언해서가 필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6. 선조임금의 언문 교지 : 선조 임금은 왜적에게 잡혔거나 빌붙은 백성들에게 꾀를 써서 빠져나오기를 권유하는 교지를 한글로 써서 발표했다.  이것은 국가의 통치자인 임금이 한글을 통해 백성들에게 뜻을 전했음을 의미한다.

 

7. 국가 포고문을 한문과 언문으로 동시 발표 : 영조와 정조는 구휼(가난 구제)에 관한 윤음을 한문과 언문으로 옮겨서 동시에 발표했다. 비록 백성을 대상으로 실생활에 관한 내용을 적은 글이지만 한글은 한문과 거의 대등한 모습으로 조정의 발표에 쓰인 것이다 .

 

8. 외교 문서로 활용 : 경종 원년(1720년) 청나라에 사신으로 간 고부사 이이명은 왕비 책봉에 관한 청나라에서의 상황을 언문으로 써서 조정으로 알렸다. 한문으로 썼을 경우 비밀 보장에 대한 고육책에서 나온 것이지만, 언문은 외교문서로 까지 활용된 것이다.

 

9. 왕실 여성들의 제도적 언문 사용 : 조선 시대 훈민정음 보급의 일등 공로자는 왕실 여성들이다. 왕실의 여성들이 발행한 공식 문서는 언문으로 되어 있다. 수렴청정을 했던 대비나 대왕대비의 글 역시 언문으로 되어 있으니, 이것은 언문으로 된 문서가 조정의 대신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같은 명작이 나올 수 있었다.

 

10. 사대부의 한글 문학 창작 및 한글 작품에 대한 이해 : 정철, 박인로, 윤선도 등의 시조나 가사 작품 및 김만중의 송강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 등은 사대부들 중에도 한글을 한문 학습의 보조도구를 넘어 문학적으로 심취한 이가 적지 않았다는 증좌이다. 그밖에 허균과 김만중의 한글 소설 역시 같은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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