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고려시대의 금속활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高麗時代の金属活字。国立中央博物館所蔵。

고려시대에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한 사례는 13세기 전기에 나타나고 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 南明泉和尙頌證道歌≫ 중조본(重彫本)의 권말에 있는 최이(崔怡)의 지(誌)에 의하면, “이 책은 선문(禪門)에서 가장 긴요한 책인데, 전하는 것이 드물어 얻어 보기 어려워 주자본(鑄字本)에 의거하여 1239년(고종 26) 다시 새겨 널리 전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高麗時代の金属活字で本を印刷されたケースは、13世紀の前期に現われている。南明泉和尙頌證道の歌重彫本の巻末の崔怡志によると、”この本は禪門の中で最も重大一本なのに、伝えることがまれにして借りて読みにくいので鑄字本に基づき、1239年(高宗26)を再刻まれて、広く伝えている。”ということだ。


1377년 7월 청주목(淸州牧)의 교외에 있던 흥덕사(興德寺)가 찍어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 금속활자는 세계 인쇄문화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크게 발달하였다. 1403년(태종 3) 처음으로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고 수개월에 걸쳐 금속활자를 주조했는데, 이것이 바로 계미자(癸未字)이다.
1420년에 주조된 경자자(庚子字)에 이르러 두번째 단계의 발전을 보게 되었다. 계미자의 모양이 크고 가지런하지 못해 그보다 작으면서도 글자획을 박력 있고 예쁘게 주조한 것
조 판용 동판과 활자를 평평하고 바르게 만들어 서로 잘 맞도록 개량하였다. 그리하여 인쇄할 때 밀랍을 사용하지 않아도 활자가 움직이지 않고 매우 해정(楷正:글자획이 바름.)하여 인쇄 능률이 크게 올라 계미자의 하루 인출 능률이 ‘수지(數紙)’인 데 비하여 경자자는 ‘이십여 지’로 늘어났다.
1377年7月淸州牧の郊外にあった興德寺が出版した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を持ち上げることができる。

朝鮮時代に来て、金属活字は、世界の印刷文化史上、その類を見ないられないほど大きく発達している。 1403年(太宗3)初めて鑄字所を設置し、数ヶ月かけての金属活字を鋳造したが、これが癸未字である。

1420年に鋳造された庚子字に至り、第2段階の発展を見るようになった。癸未字の形態が大きく、一定しないことができず、それよりも小さく文字の劃が迫力あり、きれいに形成されたもの

組版用の銅版と活字を平らにし、正しく作成し、お互いによく合うように改良した。そういうわけで印刷するときに蜜蠟を使用しなくても、活字に変化がなく、非常に楷正して、印刷の効率が大幅に上がり、癸未字の一日の引き出し効率が”數紙のために比べて庚子字は[20以上か”に増えた。


조선시대에 세번째로 개량된 활자는 갑인자이다.
주조·조판·인출의 기술이 갑인자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한글 활자가 주조, 병용된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 한글 활자는 근래의 인서체에서 보는 바와 같은 고딕체의 큰 자와 작은 자로, 갑인자의 유려하고 부드러운 필서체와 조화 있게 배자되어 찍힌 인본을 보면, 그 우아 정교도는 우리 나라의 금속활자본 중 백미(白眉)

朝鮮時代の3番目に改良された活字は甲寅字である。
鋳造.組版·引き出しの技術が組版に至って絶頂に達した。そしてこの時、最初にハングル活字が鋳造、倂用した点が特記に値する。このハングル活字は、近年の印書體に示すようなゴシック体の大きい文字と小さい文字で、甲寅字の流麗、スムーズな筆體と調和に配字されて撮られた印本をみると、その優雅で精巧は我々の国の金属活字本の白眉

癸未字 소미가숙점교부음통감절요(少微家塾點校附音通鑑節要)  

계미자 [癸未字]
1403년(태종 3) 계미년에 만든 조선시대 최초의 구리활자[銅活字].
서적이 적다 하여 왕명에 의하여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고,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이직(李稷), 총제(總制) 민무질(閔無疾), 지신사(知申事) 박석명(朴錫命), 우대언(右大言) 이응(李膺)이 제조(提調)가 되어 임금이 하사(下賜)한 구리와 대소(大小) 신료(臣僚)와 유지(有志)들이 바친 구리로 활자를 만들었는데, 이 때에 주조된 활자수는 약 10만 자나 되었다.
자체의 크기는 1.4㎠이다. 자본(字本)은 송판본(宋版本)의 고주(古註) 《시경(詩經)》 《서경(書經)》 《좌전(左傳)》을 이용하였으며, 인쇄본으로 현재 전하는 것은 《송조표전총류(宋朝表牋總類)》(1책) 《십칠사찬고금통요(十七史纂古今通要)》(1책)가 있다.
癸未字
1403年(太宗3)癸未年に作成された朝鮮時代の最初の銅活字
書籍が少ないし、王命によって鑄字所を設置し、藝文館大提學 李稷、總制 閔無疾、知申事 朴錫命、右大言 李膺が提調となって王が下賜した銅と大小臣僚と有志が捧げられた銅に活字を作成したが、この時に形成された活字の数は約10万やされた。
字体のサイズは1.4㎠である。字本は、宋版本の古注”詩經”“書經”” 左傳”を使用し、印刷本で現在の伝えることは、”宋朝表牋總類”(1本)”十七史纂古今通要”(1本)がある。

庚子字 소미가숙점교부음통감절요(少微家塾點校附音通鑑節要)  

경자자 [庚子字]
1420년(세종 2) 경자년(庚子年)에 만든 금속활자.
1420 년(세종 2년)에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개량한 금속활자이다.
세종은 즉위하자 계미자의 단점을 개량한 경자자(庚子字)를 만들었다. 경자자는 활자의 크기는 전보다 작으면서도 네모나게 고치고, 조판용 동판과 활자를 평평하고 바르게 만들어 인쇄할 때 밀랍을 사용하지 않아도 서로 잘 맞아 활자가 움직이지 않게 개량되었다. 개량된 경자자는 계미자보다 4~5배 정도의 증가된 인쇄능률을 보였다. 하지만 옆 줄이 일직선을 이루지 못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어 개량되었으며, 후에 갑인자(甲寅字) 등으로 발전하였다.
庚子字
1420年(世宗2)庚子年に作成された金属活字。
1420年(世宗2年)に初の金金属活字である癸未字を改良した金属活字である。
世宗が即位しよう癸未字の欠点を改良した庚子字を作った。庚子字は活字の大きさは前よりも小さく四角によると固定し、 組版用 銅版と活字を平らにし、正しく作成し、印刷するときに蜜蠟を使用しなくても、お互いによく迎え、活字が動かないように改良された。改良された庚子字は癸未字よりも4〜5倍程度の高められた印刷の効率を示した。しかし、側面の線が一直線になっていないことなどの問題があり改良されており、後に甲寅字などに発展した。

甲寅字 신편음점성리군서구해(新編音點性理群書句解)               

갑인자 [甲寅字]
1434년(세종 16) 갑인년에 주자소(鑄字所)에서 만든 동활자 .
경자자(庚子字)가 납(蠟)을 판(板) 밑에 펴서 그 위에 글자를 차례로 맞추어 꽂아 사용하는 형태이므로 글자가 쏠리고 비뚤어지는 등 정밀하지 못하여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다.
세종의 명에 의해 중추원지사(中樞院知事) 이천(李蕆)·직제학 김돈(金墩)·직전(直殿) 김빈(金鑌)·호군(護軍) 장영실(蔣英實)·사역원첨지사(司譯院僉知事) 이세형(李世衡)·사인(舍人) 정척(鄭陟)·주부(主簿) 이순지(李純之) 등이 2달 동안 20여만 자의 글자를 주조하였다.
글자는 경연청(經筵廳)에 소장된 《효순사실(孝順事實)》《위선음즐(爲善陰騭)》《논어》 등 명(明)나라 초기 판본(版本)을 자본(字本)으로 삼았다. 활자의 모양이 바르고 글자의 크기가 고르게 조립되었으며, 자판의 빈틈을 납을 사용하지 않고 대나무를 이용하였으므로 글자가 선명하고 아름답다. 하루에 활자를 찍어 내는 양이 40여 장에 달하여 경자자보다 배 이상의 생산력을 가질 수 있었다.
갑인자는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섯 번에 걸쳐 개주(改鑄)되었다. 이들을 서로 구별하기 위해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활자를 초조갑인자, 1580년(선조 13) 경진년에 만들어진 활자를 재주갑인자 혹은 경진자(庚辰字), 1618년(광해군 10)에 만들어진 활자를 삼주갑인자 혹은 무오자(戊午字), 1668년(현종 9)에 주조된 활자를 사주갑인자 혹은 무신자(戊申字), 1772년(영조 48)에 만들어진 활자를 오주갑인자 혹은 임진자(壬辰字), 1777년(정조 1) 주조된 활자를 육주갑인자 혹은 정유자(丁酉字)라고 부른다.
甲寅字
1434年(世宗16)甲寅年に鑄字所で作成された銅活字。
庚子字が蠟をボード(板)の下に伸ばし、その上に文字の順に一直線に差し込んで使用するものであるため、文字が集まって斜めなどの精密されず、これを補完するために作った。
 
世宗の命により中樞院知事 李蒇· 直提學 金墩· 直殿 金鑌·護軍 蔣英實 ·司譯院僉知事 李世衡 ·舍人 鄭陟、主簿 李純之が2カ月の間に20万文字の文字を鑄造している。
 
字体は經筵廳に収められている”孝順事實”“爲善陰騭”“論語”など、明の初期の版本字本とした。活字の形がさし、文字の大きさが均等に実装されており、字版の隙間に蜜蠟を使用せずに、竹を利用していますので文字が鮮やかで美しい。一日に活字を撮って出す量が40章に達し、庚子字よりも倍以上の生産性を持つことができる。
 
甲寅字は朝鮮末期に至るまで、すべての6度にわたり改鑄された。これらを区別するために、世宗時に初めて作られた活字を初造甲寅字、1580年(宣祖13)庚辰年に作られた活字を再鑄甲寅字あるいは庚辰字、1618年(光海君10)で作成された活字が、三鑄甲寅字あるいは戊午字、1668年(顕宗10)に形成された活字を四鑄甲寅字あるいは戊申字、1772年(英祖48)に作られた活字を五鑄甲寅字あるいは壬辰字、1777年(正祖1)形成された活字を六鑄甲寅字あるいは丁酉字と呼ぶ。

활자 계보에 오른 금속활자만도 그 종류가 무려 35종에 이른다. 우리 나라 명필가의 글자체를 바탕으로 한 활자가 17종 있는가 하면, 중국 각 역조의 간본 글자체를 바탕으로 한 것이 18종
活字の系譜の上がったの金属活字だけでも、その種類は実に35種にのぼる。私たちの国の名筆家の書体をもとにした活字が17種あるかというと、中国の各歷朝の刊本の書体をベースにしたものが18種

庚辰字  중용혹문(中庸或問) 

戊午字  서전대전(書傳大全) 

戊申字  숙묘보감(肅廟寶鑑) 

壬辰字  아송( 雅誦)

丁酉字  서전대전(書傳大全)


조선시대의 과학기술 - 금속활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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