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ルイスプロイス(Luis Frois)はポルトガル出身のイエズス会宣教師だ. 彼はカトリック布教のために 1563年日本に渡ったし, 織田信長, 豊臣秀吉など当時日本の最高権力者たちと密接な関係を維持する 1597年日本長崎で死亡する. 日本内部事情に精通したルイスプロイスは ‘ポルトガル領東インド歴史’を編纂したポルトガルの国家的事業によって 1549‾1594年までの ‘日本史’を編纂するようになる. そしてまさにこの中に西洋人の目で眺めた壬辰の乱の勃発院である, 展開, 日本軍の敗北原因などが詳細に記述される. 韓国では ‘壬辰の乱と豊臣秀吉’という題目の本で出刊になった.

 

 

 

ルイスプロイスの朝鮮人に対する評価

 

 

朝鮮人はダルダンインや蛮夷たちともよく接触しながら彼らに勇ましく対抗した. … この国は豊かで多くの米と麦が生えて … 彼らの作った工作品は精巧で美しくて彼らが腕前が良いという事実を言ってくれる.

 

 

朝鮮軍事に対する評価を見よう.

 

 

人々は色が白くて元気で大食漢たちで力が強い. 彼らはトルコ仁義弓のような小さな弓を非常によく扱って, 毒を塗った矢を使うと言う. その外の武器は威力がなくて, 特に刀は短くてあまり役に立たない. … 内陸の方にあるいくつかの城砦は防備が十分ではないが日本との境界にあたる浜辺一帯の城砦だけは防備が堅固であり, その所には保有できるだけ多くの良医弾薬を積んでおいた.

 

朝鮮水軍の航進も(航津図)

 

 

 

ルイスプロイスは戦争の初期進行過程に対しても詳細に描く. 朝鮮の陸軍は日本軍に連戦連敗してたやすくソウルまで渡す. 日本軍は早い速度で進撃をして行くが第1陣の急先ぽうである小西ユキナがは普及問題で悩みに陷る.

 

 

… 大遠征を行うためにはまず先に必要な食糧及びすべての兵站品を準備しなければならなくて … 私の計画ではソウルは海に身近に位していて川を 1里位さかのぼると至ることができるから, 海上に食糧を輸送して近所を流れる川を通じて西の方からソウルをかこむのが適切だとする. …

 

 

私たちがよく分かっていることのように円滑な普及のために水陸併進作戦を計画したのだ. しかし触りなく進軍した日本軍はすぐここで大きな障害物を向い合うようになる. すぐ忠武公李舜臣が導く朝鮮水軍だった.

 

 

… 日本軍のぶつかった難関は朝鮮軍がお互いに団結して連合軍を編成, 幾多の船に上船して攻撃して来た事実だった. 朝鮮軍は日本軍よりも海戦にずっと慣れたから日本軍に多くの損害を被らせたが, このような日本軍の災難は果てしなく続いた.

 

 

 

 

朝鮮水軍のズリョックハムである板屋船(板屋船)

 

 

そして引き継いで朝鮮水軍と日本軍の一番目海戦(玉浦海戦)を詳しく描く.

 

 

… 以前から朝鮮人は日本お腹を捜すのに血眼になっていたから彼らと遭遇すると大きい大声を出して喜んでお腹を走って日本の艦隊を攻撃した. 朝鮮の船舶は高くて丈夫に作われたから日本お腹を圧倒した. まず朝鮮数だね方で火器による攻撃があったが, これが日本人を大変てこずらせて苦しめたから, 日本人は朝鮮人たちのこの煩わしい接近の前から脱するために海の方で遠く進む戦術に応戦した. … このけんかで朝鮮人たちは 70尺の日本お腹を奪って兵士大部分を殺害した. 残り兵士らはやっと命だけ引き上げて逃げた.

 

 

 

玉浦海戦は忠武公李舜臣と元均が連合して板屋船 27尺などの艦隊を導いてドドダカー島ラーガ指揮する日本艦隊 50余尺を迎え勝利した戦闘だ. 海戦の展開過程や朝鮮水軍の攻撃戦術などをよく見る時相当な信憑性を持った記録なのを分かる.

以後朝鮮水軍に連戦連敗する日本軍を見てルイスプロイスはどんな評価を下そうか?

 返事は簡単だ.

 

 

そのほかの多くのことを列挙することはやめるのに, 日本軍は海戦に対する知識がとても短くて 少ない撃退するための火器が不足で 海ではいつも不利な状況に処していた.

 

 

 


서양인의 눈으로 본 조선 수군

 

루이스 프로이스(Luis Frois)는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이다. 그는 천주교 포교를 위해 1563년 일본으로 건너갔고,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당시 일본의 최고 권력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다 1597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사망한다. 일본 내부 사정에 정통했던 루이스 프로이스는 ‘포르투갈령 동인도 역사’를 편찬하던 포르투갈의 국가적 사업에 따라 1549~1594년까지의 ‘일본사’를 편찬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안에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임진왜란의 발발원인, 전개, 일본군의 패배 원인 등이 상세하게 기술된다. 한국에서는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 되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한국인에 대한 평가

 

한국인은 달단인이나 오랑캐들과도 자주 접촉하면서 그들에게 용감히 대항하였다. … 이 나라는 풍요하여 많은 쌀과 보리가 나고 … 그들이 만든 공작품은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그들이 솜씨가 좋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조선 군사에 대한 평을 보자.

 

 

사람들은 피부색이 하얗고 건강하고 대식가들이며 힘이 세다. 그들은 터키 인의 활과 같은 작은 활을 매우 잘 다루고, 독을 바른 화살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 밖의 무기는 위력이 없고, 특히 칼은 짧으며 그다지 쓸모가 없다. … 내륙 쪽에 있는 몇몇 성채는 방비가 충분치 않으나 일본과의 경계에 해당하는 해변 일대의 성채만은 방비가 견고하며, 그곳에는 보유 가능한 많은 양의 탄약을 쌓아 놓았다.

 

조선 수군의 항진도(航津圖)

 

 

 

루이스 프로이스는 전쟁의 초기 진행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묘사한다. 조선의 육군은 일본군에게 연전연패하며 쉽사리 서울까지 내어준다. 일본군은 빠른 속도로 진격을 해나가지만 제1진의 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보급 문제로 고민에 빠진다.

 

 

… 대원정을 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필요한 식량 및 모든 군수품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며 … 나의 계획으로는 서울은 바다에 가까이 위치해 있고 강을 1리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다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해상으로 식량을 수송하고 부근을 흐르는 강을 통해서 서쪽으로부터 서울을 포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하겠다.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원활한 보급을 위해 수륙병진작전을 계획한 것이다. 하지만 거침없이 진군하던 일본군은 바로 여기서 커다란 장애물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었다.

 

 

… 일본군이 부딪친 난관은 조선군이 서로 단결하여서 연합군을 편성, 수많은 배에 승선하여 공격해 온 사실이었다. 조선군은 일본군보다도 해전에 훨씬 익숙했기 때문에 일본군에게 많은 손해를 입혔는데, 이러한 일본군의 재난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조선 수군의 주력함인 판옥선(板屋船)

 

 

그리고 이어서 조선 수군과 일본군의 첫 번째 해전(옥포해전)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 이전부터 한국인은 일본 배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조우하자 큰 소리를 지르고 기뻐하며 배를 몰아 일본의 함대를 공격했다. 조선의 선박은 높고 튼튼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본 배를 압도하였다. 우선 조선 수군 쪽에서 화기에 의한 공격이 있었는데, 이것이 일본인을 몹시 애먹이고 괴롭혔기 때문에, 일본인은 한국인들의 이 성가신 접근 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바다 쪽으로 멀리 나아가는 전술로 응전했다. … 이 싸움에서 한국인들은 70척의 일본 배를 빼앗고 병사 대부분을 살해하였다. 나머지 병사들은 겨우 목숨만 건지고서 도망쳤다.

 

 

옥포해전은 충무공 이순신과 원균이 연합하여 판옥선 27척 등의 함대를 이끌고 도도 다카도라가 지휘하는 일본 함대 50여 척을 맞아 승리한 전투이다. 해전의 전개과정이나 조선 수군의 공격 전술 등을 살펴볼 때 상당한 신빙성을 가진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선 수군에게 연전연패하는 일본군을 보며 루이스 프로이스는 어떤 평가를 내릴까?

 대답은 간단하다.

 

 

여타의 많은 일들을 열거하는 것은 그만두겠는데, 일본군은 해전에 대한 지식이 너무 짧고 적을 격퇴하기 위한 화기가 부족하여 바다에서는 언제나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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