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遠く広く見られるように屋根裏構造で高く建てられた樓閣と景観が秀麗で四方が裂けた所に建てられた精子は, 自然の中で多くの人がまたは一人で風流を楽しんで精神修養の場所に活用された建築物だ. 勉強して学問を研究する両班たちは過去試験に合格するために勉強を長続いたし, 四書三経が中心になる学問はハックムンウロだけではない生活化を重要視した. それは自然人としての清廉さとつましい生活で自然に順応しようとする生活哲学だった. その方法で先人(仙人)の境地を自然人で仮定して先人に近くなるために自分を常時自然の一員で報告, いつも自然とともに存在する見送ることで精子や樓閣が発生するようになった. したがって精子が個人的なら, 樓閣は功績なことで接待と風流で学問を研きながら精神を修養する高い水準の空間になる.

 

 

樓閣の記録で古いことは 636年(百済武王 37年) “臣下たちと亡骸塁で宴を支払った…”と言う 《三国有史》の記録を見られるし, 《三国史記》でも新羅に忘恩塁, 鳴鶴塁, 月賞塁などの樓閣名前を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るし, 高句麗城郭絵でも樓閣形態の建築物が現われることで宮廷及び官煬建築が公共施設としてかつて存在したことを分かる. 競走の雁鴨池と臨海前でも自然の中での生活を享受しようと人工池と樹林を作って周りに漏丁を建築したのは良い失礼になる.

 

精子も同じく三国有史で 488年(百済所持王 10年), チォンチォンゾングに王様がお出まししたという記録があって, 韓国では三国時代から精子が建築されたことを分かる. 高麗時代の宰相リ・キュボの <四輪定期(四輪亭記)>という文で精子に必要な道具で本, 枕, 碁盤を重要視して, 集まって楽しむ人々を詩をよく書く人, 琴をよく乗る人, 歌がお上手な人, 碁を打つ人々に例えたことは, 精子が遊んで楽しむ所だけだけではなく学者たちの張役目が分かる. 朝鮮王朝で留学思想が国家的次元ではもちろん一般生活哲学に徹底的に適用されながら精子は支配階級, すなわち両班階級の生活に広く普及された. 山と野での精子の場所性が見せてくれるように, 自然合一という伝統的建築官が積極的に反映されて神仙がイッウムジックした仙境(仙景)を好んだ. 徐々に日常生活と近く精子を置いて, 住宅眺望または住宅内に精子を置いたり, 別堂の精子化やテーチョンの一部分をしたという高めて突き出させて精子の雰囲気を構えたヌマルが形成されたりした. したがって精子は個人的修養のための風流機能, 教育のための講学機能, 宗教的な祖先崇拜のための機能, 地域的な係の集まりの機能などのために建築されて, 隠遁と勉強のためのビョルソの漏丁式(ビョルソゾングワン:別墅庭園)と一般庶民たちの農村野原または村入口に母情(茅亭)がある. 人為的な自然構成と精子関係は池を四角形にして, 地を意味するようにして池の中丸い島を二つ程の空を意味するようにして精子の人と一緒に空 ・地 ・人[天地人]を空間上に計画するのが一般的な建築設計の例になる.

 

 

有名な樓閣の例えば, ソウル景福宮の慶会桜, 昌徳宮の酒少桜, 三尺の竹西樓, 密陽の嶺南塁, 晋州の轟石桜, 南原の広寒桜外に宮殿, お寺, 学校, 書院, 城郭などにたくさんいる. 精子では昌徳宮内の芙蓉亭, テグックゾングを含めて全国に数えきれないほど多い.

 

 

 

 

代表的な樓閣たち..

景福宮慶会桜 [ 景福宮慶会樓 ]

 

 

 

三尺竹西樓 [ 三陟竹西樓 ]

 

 

 

 

密陽嶺南塁 [ 密陽嶺南樓 ]

 

 

轟石桜 [ 矗石樓, 真珠轟石桜 ]

 

 

広寒桜 [ 広寒樓, 南原広寒桜 ]

 

 

 

 

 

北朝鮮にある樓閣.

 

 

白桑塁 [ 百祥樓, おつまみ白桑塁 ]

 

 

鋼船塁 [ 降仙樓, ソングチォンガングソンル ]

(1千人を 収容することができるほどの巨大な樓閣. 6.25の時破壊された.)


조선시대의 누각[樓閣]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는, 자연 속에서 여러 명이 또는 혼자서 풍류를 즐기며 정신수양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건축물이다. 공부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양반들은 과거시험에 급제하기 위해 공부를 지속했으며, 사서삼경이 중심이 되는 학문은 학문으로만이 아닌 생활화를 중요시했다. 그것은 자연인으로서의 청렴함과 검소한 생활로 자연에 순응하고자 하는 생활철학이었다. 그 방법으로 선인(仙人)의 경지를 자연인으로 가정하고 선인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자신을 항시 자연의 일원으로 보고, 항상 자연과 함께 존재하는 바램에서 정자나 누각이 발생하게 되었다. 따라서 정자가 개인적이라면, 누각은 공적인 것으로 접대와 풍류로 학문을 연마하면서 정신을 수양하는 높은 수준의 공간이 된다.

 

누각의 기록으로 오래된 것은 636년(백제 무왕 37년) “신하들과 망해루에서 잔치를 치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볼 수 있고, 《삼국사기》에서도 신라에 망은루, 명학루, 월상루 등의 누각이름을 찾아볼 수 있으며, 고구려 성곽그림에서도 누각형태의 건축물이 나타남으로써 궁궐 및 관아 건축이 공공시설로서 일찍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경주의 안압지와 임해전에서도 자연 속에서의 생활을 누리고자 인공 연못과 수림을 만들고 주위에 누정을 건축했음은 좋은 실례가 된다.

 

정자도 마찬가지로 삼국유사에서 488년(백제 소지왕 10년), 천천정에 임금이 행차했다는 기록이 있어,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정자가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재상 이규보의 <사륜정기(四輪亭記)>라는 글에서 정자에 필요한 도구로 책, 베개, 바둑판을 중요시하고, 모여 즐기는 사람들을 시를 잘 쓰는 사람, 거문고를 잘 타는 사람, 노래를 잘하는 사람, 바둑을 두는 사람들로 예를 든 것은, 정자가 놀고 즐기는 곳 뿐만이 아니라 학자들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에서 유학사상이 국가적 차원에서는 물론 일반생활철학에 철저히 적용되면서 정자는 지배계급, 즉 양반계급의 생활에 넓게 보급되었다. 산과 들에서의 정자의 장소성이 보여주듯이, 자연합일이라는 전통적 건축관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신선이 있음직한 선경(仙景)을 선호했다. 차츰 일상생활과 가깝게 정자를 두어, 주택조망 또는 주택 내에 정자를 두기도 하고, 별당의 정자화나 대청마루의 한 부분을 한단 높여 돌출시켜서 정자의 분위기를 꾸민 누마루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정자는 개인적 수양을 위한 풍류기능, 교육을 위한 강학기능, 종교적인 조상숭배를 위한 기능, 지역적인 계 모임의 기능 등을 위해 건축되고, 은둔과 공부를 위한 별서의 누정식(별서정원:別墅庭園)과 일반서민들의 농촌들판 또는 마을 입구에 모정(茅亭)이 있다. 인위적인 자연구성과 정자 관계는 연못을 사각형으로 하여, 땅을 의미하게 하고 연못 가운데 동그란 섬을 두어 하늘을 뜻하게 하며 정자의 사람과 함께 하늘 ·땅 ·사람[天地人]을 공간상으로 계획하는 것이 일반적인 건축설계의 예가 된다.

 

유명한 누각의 예를 들면, 서울 경복궁의 경회루, 창덕궁의 주합루, 삼척의 죽서루, 밀양의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 남원의 광한루 외에 궁전, 사찰, 학교, 서원, 성곽 등에 많이 있다. 정자로는 창덕궁 내의 부용정, 태극정을 비롯하여 전국에 수없이 많다.

 

 

 

 

대표적인 누각들..

경복궁 경회루 [ 景福宮慶會樓 ]

 

 

 

삼척 죽서루 [ 三陟竹西樓 ]

 

 

 

밀양 영남루 [ 密陽嶺南樓 ]

 

 

촉석루 [ 矗石樓, 진주 촉석루 ]

 

 

광한루 [ 廣寒樓, 남원 광한루 ]

 

 

 

 

 

북한에 있는 누각.

 

 

백상루 [ 百祥樓, 안주백상루 ]

 

 

강선루 [ 降仙樓, 성천강선루 ]

(1천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누각. 6.25때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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