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오늘은 일본의 소바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今日は、日本のそばについて調べてみましょう。

翻訳が良くないのですが変な翻訳指摘してくだされば親切に説明させていただきます。

 

蕎麦粉を麺の形態に加工する調理法は、16世紀末あるいは17世紀初頭に生まれたといわれる。古くは、同じく蕎麦粉を練った食品である蕎麦掻き(そばがき、蕎麦練りとも言う)と区別するため蕎麦切り(そばきり)と呼ばれた。現在は、省略して単に蕎麦と呼ぶことが多いが、「蕎麦切り」の呼称が残る地域も存在する。
この蕎麦切りの存在が確認できる最も古い文献は、長野県木曽郡大桑村須原にある定勝寺の寄進記録である。同寺での1574年(天正2年)初めの建物修復工事完成に際しての寄進物一覧の中に「振舞ソハキリ金永」というくだりが確認でき、少なくともこの時点で蕎麦切りが存在していたことが判明している。
他に蕎麦切り発祥地として中山道本山宿(現在の長野県塩尻市宗賀本山地区)という説、甲斐国の天目山栖雲寺(現在の山梨県甲州市大和町)説(天野信景著『塩尻』)もあるが、定勝寺文書の傍証を鑑みるに、確実な発祥地とは言い難い。
しかしながら、江戸時代初期から文献では、特に寺院などで「寺方蕎麦」として蕎麦切りが作られ、茶席などで提供されたりした例が見られる。1643 年(寛永20年)に書かれた料理書「料理物語」には、饂飩、切麦などと並んで蕎麦切りの製法が載っている。17世紀中期以降、蕎麦切りは江戸を中心に急速に普及し、日常的な食物として定着した。
蕎麦がいわゆるめん類として普及するのはようやく江戸時代になってからです。それまでの蕎麦は、つなぎの方法を知らなかったため、めん線状に成形できず、そば錬りかそば団子にして食するほかなかったのですが、寛永年間(1624~1644年)、朝鮮僧元珍がつなぎに小麦粉を使用することを南都東大寺に伝授して以来、蕎麦はめん類として急速に普及するに至ったのです。これは、当時は「そばきり」という名称で呼ばれました。
http://www.namamen-hyogo.jp/story/history03.html

메밀 가루를 국수 모양으로 가공하는 조리법은 16 세기 후반 혹은 17 세기 초반에 태어 났다고 전해진다. 옛날에는, 같은 메밀 가루를 반죽하는 식품이다蕎麦掻き(소바가왔다,蕎麦練り이라고도 함)과 구별하기 위해蕎麦切り(소바 기리)라고했다. 지금은 생략하고 간단하게 메밀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蕎麦切り”의 호칭이 남아있는 지역도 존재한다.
이蕎麦切り의 존재를 확인할 수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나가노현 기소 군大桑마을須原의定勝선사의 기부 기록이다. 이 사원에서 1574 년 (덴쇼 2 년) 처음 건물 복구 공사 완성시의 기부 물질 목록에 “振舞소하키리 김영”라는 대목을 확인할 수, 적어도 지금蕎麦切り이 존재했던 것이 판명 하고있다.
다른蕎麦切り발상지로 나카 센도 본산 숙소 (현재 나가노현시오 지리시宗賀본산 지구)라는 설, 가이 노 쿠니의 덴모쿠잔栖雲사 (현 야마나시 현 고슈시 야마 마치) 설 (아마노信景의 “시오 지리』) 도 있지만,定勝사원 문서의 방증을鑑みる에 확실한 발상지로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에도시대 초기부터 문학, 특히 사원 등에서 “寺方메밀”로蕎麦切り가 만들어져茶席등으로 제공하기도했다 예를 볼 수있다. 1643 년 (간에 20 년)에 쓴 요리책 “음식 이야기”는饂飩, 자르 맥 등과 함께蕎麦切り제조법이 실려있다. 17 세기 중기 이후,蕎麦切り는에도를 중심으로 급속히 보급,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메밀이 소위めん類으로 보급되는 것은 겨우 에도시대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메밀은 연결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온통 선형 성형 못하고 옆에錬り가 옆에 경단하고 가릴 수밖에 없었다 니다만,간에 년간 (1624 ~ 1644 년), 조선 승려 원 진도가 연결에 밀가루를 사용하는 남도 도다 전수 이후 소바는めん類로 급속히 보급하게되었다합니다. 이것은 당시에는 “소바 기리”라는 명칭으로 불리고있습니다.

蕎麦がいわゆるめん類として普及するのはようやく江戸時代になってからです。それまでの蕎麦は、つなぎの方法を知らなかったため、めん線状に成形できず、そば錬りかそば団子にして食するほかなかったのですが、寛永年間(1624~1644年)、朝鮮僧元珍がつなぎに小麦粉を使用することを南都東大寺に伝授して以来、蕎麦はめん類として急速に普及するに至ったのです。これは、当時は「そばきり」という名称で呼ばれました。
http://www.namamen-hyogo.jp/story/history03.html
메밀이 소위めん類으로 보급되는 것은 겨우 에도시대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메밀은 연결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온통 선형 성형 못하고 옆에錬り가 옆에 경단하고 가릴 수밖에 없었다 니다만,간에 년간 (1624 ~ 1644 년), 조선 승려 원 진도가 연결에 밀가루를 사용하는 남도 도다 전수 이후 소바는めん類로 급속히 보급하게되었다합니다. 이것은 당시에는 “소바 기리”라는 명칭으로 불리고있습니다.

 

놀랍습니다.일본의 자랑 메밀국수는  朝鮮僧元珍의 도움이 결정적이었군요.
다음은  1459년 경에 편찬된 山家要录의 국수 제조법을 살펴 봅시다.
びっくりです。日本の自慢のそばは朝鲜僧元珍のことが決定的だったのですね。
以下は、1459年ごろに編纂された山家要录の麺のレシピを見てみましょう。

 

면법(麺法 : 국수)
점실속(占實粟 : 올차조)을 잘 갈아서 수비(水飛)29)한 것과, 메밀을 곱게
가루 내어 볕에 말린 것을 같은 분량으로 넣고 국수를 만든다.
麺法:麺
占實粟 をよく粉砕による水飛したのと、そば粉を細かく
小麦粉を立てて日焼け乾燥されたことを同じ分量で混ぜて麺を作る。

 

계란면(鷄卵麺)
날계란 깨트린 것 약간을 밀가루에 섞어서 반죽하여 판에다 얇게 미는
데 얇게 할수록 좋으며, 물에 삶아서 쓴다. 흑탕시(黑湯豉 : 흑탕은 짐승의 고기
를 끓인 국물)는 여러 곳에 조금씩 쓴다.
鷄卵麺
生卵の少しを小麦粉に混ぜて練って板に薄く押す
に薄くすればするほど良く、水で煮て使う。黑湯豉( 黑湯:獣の肉
を煮込んだスープ)は、複数のところに少しずつ使う。

 

육면(肉麺)
고기를 솔잎처럼 썰어서 깨끗이 씻어서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뒤집어가
며 묻혀서 물에 넣고 삶는데 장시(醬豉)를 뜨겁게 하여 채소를 넣어서 쓴
다.
肉麺
肉の松葉のように切り、きれいに洗って小麦粉 または そば粉を裏返しに
とし、つける 水に入れ、煮て 酱豉を熱くして、野菜を入れて使いて
ている。

 

세면(細麵 : 실국수)
녹두녹말 5홉을 얼음물로 반죽하여 가마솥에 넣고 젓다가 끓는 물속에
서 떠오르면 바가지에 담아서 나무젓가락 3~4개로 저어서 풀[膠]처럼 만
들고, 또 나무젓가락을 들어올려 실풀이 나오듯 하면 된다. 녹두녹말 7~8
되를 그릇에 담아서 위의 풀을 넣고 휘저어서 손으로 2~3자쯤 들어올려
끊어지지 않으면 바가지 밑에 솥발[鼎足]처럼 구멍 3개를 뚫는데, 손가락
끝이 들어갈 넓이로 한다. 왼손가락으로는 3구멍을 막은 채 바로 눈높이까
지 들어올리고 오른손으로는 바가지 치기를 멈추지 말고 곧 구멍을 열면
밑으로 흘러내린다. 끓여서 국수가 된 것은 얼음물에 담갔다가 씻어 꺼내
고 장국에도 끓여서 쓴다.
細麵
緑豆澱粉5合を氷水に練って釜に入れて 搔き回す 沸騰水中で
浮く...込め割り箸3〜4つに漕いで膠のようにつくる、また、割り箸を持ち上げて細膠とされている。緑豆澱粉7〜8
なを器に込めて、上記ののりを入れて打っても手に2〜3尺高揚
切れ目のない場合は、ひょうたんの下で鼎足のように穴3つをうがつ、指
先端が入る範囲とする。左手のリズムは、3穴を妨げられたまま、すぐにヌンノプイカ
まで持ち上げ、右手には、ひょうたんの打撃を停止したり、すぐに穴が開くと、
下フルロネリンダ。沸かして麺になったのは、氷水にダムガトダを洗って取り出して
とジャングクも沸かして使う。

 

창면(昌麪)
밀가루를 아주 곱게 펴서 여러 번 끊어 내어 물을 섞어 탄환만 하게 자
른다. 참기름에 담갔다가 꺼내서 판 위에 놓고 반 자 남짓한 대통[箭竹]으
로 아주 얇게 밀어서 칼로 길게 썬다. 양끝을 잡고 당겨서 소쿠리 위에 나
란히 늘어놓고 마르거든 저장하였다가 손님이 오면 곧 청장수(淸醬水)에
꿩고기나 닭고기를 넣어 끓여서 쓴다
昌麪
小麦粉を非常に細かく伸ばし、何度も切断を立てて水を混ぜてタンファンマンする者
ルンダ。ごま油でダムガトダを取り出し、板の上に置き、半分の文字余りの箭竹より
と非常に薄く押してナイフで長く切る。両端をつかんで引っ張ってザルの上に自分
ランヒ並べマルば保存してから客が来ればすぐにチョンジャンス(淸酱水)に
クォンゴギナ鶏肉を入れて煮込んで使う

 

진주면(眞珠麵)
기장쌀이나 메밀쌀로 밥을 지어 깨끗한 물에 씻어서 서로 붙지 않게 하
여 밀가루를 씌워 다시 삶아 익힌다. 다시 씻어서 또 위의 방법처럼 밀가
루를 씌운 뒤, 녹두녹말을 위의 방법대로 씌운다. 오이는 절였던 물에 씻
어서 소금기를 없앤 다음 채 썰고, 연한 고기 또한 잘게 써는데 진주면 크
기로 하여 기름에 볶고 각종 향채는 들깨즙[荏汁]과 섞어서 쓴다.
眞珠麵
キビやそばでご飯にされてきれいな水で洗浄してお互いに焦げ付き防止する
て、小麦粉をさせて再び煮て煮る。再洗浄してまた上記の方法のようにミルガ
塁させた後、緑豆でんぷんを上記の方法のようにかぶせる。きゅうりはジョルヨトドン水シト
て半塩水を取り外して千切りに、薄いし、また細かくソヌンデ真珠は、大き
交差道路して、油で炒めて様々な香菜は 荏汁と混ぜて使う。


만이창면(漫伊昌麪)
메밀가루나 밀가루를 물에 반죽하여 판에서 밀되 매우 얇게 풀뿌리 모
양으로 자른다. 끓여서 냉수에 맑아질 때까지 씻는다. 각종 매운 향채[辛香
菜]와 계란, 연한 고기를 모두 가늘게 썰어서 섞고, 참깨 껍질을 벗겨 즙을
내어 소금을 넣고 맛을 보아 적당하면 손님에게 내는데 맛이 토장(土醬)보
다 좋다.
漫伊昌麵
蕎麦粉や、小麦粉を水で練って板に薄く押すに非常に薄く、草の根のモー
量を切る。沸かして冷水にマルアジルまで洗う。様々な辛いヒャンチェ[辛香
菜]と卵、薄い肉の両方を細かく切り混ぜ、ゴマの皮をむいて汁
出して塩を入れて味を見ての適性と、客に出すの味の土蔵(土酱)ボー
両方ともいい。

 

토장(吐醬)
밀가루 1되와, 싸라기 1홉, 녹두가루 1홉을 물에 반죽하여 판에서 민다.
길이 2치에 너비 1치 반으로 자른 다음 대광주리에 담아 끓여서 익으면
물에 헹구어 차갑게 식힌다. 들깨즙과 간장에 여러 향채․기름진 고기․계
란․편으로 썬 표고를 음식에 넣어서 먹는다.
吐醬
小麦粉1升、サラギ1合、緑豆粉1合を水で練って板で押す。
長さ2の値に幅1値の半分に切った次のたけ篭に入れて煮込んでイクウには、
水ですすぎ涼しく冷やす。エゴマの汁と醤油で、複数の香菜。脂肪分の多い肉。鶏卵。
側に、シイタケを食べ物に入れて食べる。



에도시대의 식생활 8 - 麺

오늘은 일본의 소바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今日は、日本のそばについて調べてみましょう。

翻訳が良くないのですが変な翻訳指摘してくだされば親切に説明させていただきます。

 

蕎麦粉を麺の形態に加工する調理法は、16世紀末あるいは17世紀初頭に生まれたといわれる。古くは、同じく蕎麦粉を練った食品である蕎麦掻き(そばがき、蕎麦練りとも言う)と区別するため蕎麦切り(そばきり)と呼ばれた。現在は、省略して単に蕎麦と呼ぶことが多いが、「蕎麦切り」の呼称が残る地域も存在する。
この蕎麦切りの存在が確認できる最も古い文献は、長野県木曽郡大桑村須原にある定勝寺の寄進記録である。同寺での1574年(天正2年)初めの建物修復工事完成に際しての寄進物一覧の中に「振舞ソハキリ金永」というくだりが確認でき、少なくともこの時点で蕎麦切りが存在していたことが判明している。
他に蕎麦切り発祥地として中山道本山宿(現在の長野県塩尻市宗賀本山地区)という説、甲斐国の天目山栖雲寺(現在の山梨県甲州市大和町)説(天野信景著『塩尻』)もあるが、定勝寺文書の傍証を鑑みるに、確実な発祥地とは言い難い。
しかしながら、江戸時代初期から文献では、特に寺院などで「寺方蕎麦」として蕎麦切りが作られ、茶席などで提供されたりした例が見られる。1643 年(寛永20年)に書かれた料理書「料理物語」には、饂飩、切麦などと並んで蕎麦切りの製法が載っている。17世紀中期以降、蕎麦切りは江戸を中心に急速に普及し、日常的な食物として定着した。
蕎麦がいわゆるめん類として普及するのはようやく江戸時代になってからです。それまでの蕎麦は、つなぎの方法を知らなかったため、めん線状に成形できず、そば錬りかそば団子にして食するほかなかったのですが、寛永年間(1624~1644年)、朝鮮僧元珍がつなぎに小麦粉を使用することを南都東大寺に伝授して以来、蕎麦はめん類として急速に普及するに至ったのです。これは、当時は「そばきり」という名称で呼ばれました。
http://www.namamen-hyogo.jp/story/history03.html

메밀 가루를 국수 모양으로 가공하는 조리법은 16 세기 후반 혹은 17 세기 초반에 태어 났다고 전해진다. 옛날에는, 같은 메밀 가루를 반죽하는 식품이다蕎麦掻き(소바가왔다,蕎麦練り이라고도 함)과 구별하기 위해蕎麦切り(소바 기리)라고했다. 지금은 생략하고 간단하게 메밀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蕎麦切り"의 호칭이 남아있는 지역도 존재한다.
이蕎麦切り의 존재를 확인할 수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나가노현 기소 군大桑마을須原의定勝선사의 기부 기록이다. 이 사원에서 1574 년 (덴쇼 2 년) 처음 건물 복구 공사 완성시의 기부 물질 목록에 "振舞소하키리 김영"라는 대목을 확인할 수, 적어도 지금蕎麦切り이 존재했던 것이 판명 하고있다.
다른蕎麦切り발상지로 나카 센도 본산 숙소 (현재 나가노현시오 지리시宗賀본산 지구)라는 설, 가이 노 쿠니의 덴모쿠잔栖雲사 (현 야마나시 현 고슈시 야마 마치) 설 (아마노信景의 "시오 지리』) 도 있지만,定勝사원 문서의 방증을鑑みる에 확실한 발상지로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에도시대 초기부터 문학, 특히 사원 등에서 "寺方메밀"로蕎麦切り가 만들어져茶席등으로 제공하기도했다 예를 볼 수있다. 1643 년 (간에 20 년)에 쓴 요리책 "음식 이야기"는饂飩, 자르 맥 등과 함께蕎麦切り제조법이 실려있다. 17 세기 중기 이후,蕎麦切り는에도를 중심으로 급속히 보급,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메밀이 소위めん類으로 보급되는 것은 겨우 에도시대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메밀은 연결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온통 선형 성형 못하고 옆에錬り가 옆에 경단하고 가릴 수밖에 없었다 니다만,간에 년간 (1624 ~ 1644 년), 조선 승려 원 진도가 연결에 밀가루를 사용하는 남도 도다 전수 이후 소바는めん類로 급속히 보급하게되었다합니다. 이것은 당시에는 "소바 기리"라는 명칭으로 불리고있습니다.

蕎麦がいわゆるめん類として普及するのはようやく江戸時代になってからです。それまでの蕎麦は、つなぎの方法を知らなかったため、めん線状に成形できず、そば錬りかそば団子にして食するほかなかったのですが、寛永年間(1624~1644年)、朝鮮僧元珍がつなぎに小麦粉を使用することを南都東大寺に伝授して以来、蕎麦はめん類として急速に普及するに至ったのです。これは、当時は「そばきり」という名称で呼ばれました。
http://www.namamen-hyogo.jp/story/history03.html
메밀이 소위めん類으로 보급되는 것은 겨우 에도시대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메밀은 연결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온통 선형 성형 못하고 옆에錬り가 옆에 경단하고 가릴 수밖에 없었다 니다만,간에 년간 (1624 ~ 1644 년), 조선 승려 원 진도가 연결에 밀가루를 사용하는 남도 도다 전수 이후 소바는めん類로 급속히 보급하게되었다합니다. 이것은 당시에는 "소바 기리"라는 명칭으로 불리고있습니다.

 

놀랍습니다.일본의 자랑 메밀국수는  朝鮮僧元珍의 도움이 결정적이었군요.
다음은  1459년 경에 편찬된 山家要录의 국수 제조법을 살펴 봅시다.
びっくりです。日本の自慢のそばは朝鲜僧元珍のことが決定的だったのですね。
以下は、1459年ごろに編纂された山家要录の麺のレシピを見てみましょう。

 

면법(麺法 : 국수)
점실속(占實粟 : 올차조)을 잘 갈아서 수비(水飛)29)한 것과, 메밀을 곱게
가루 내어 볕에 말린 것을 같은 분량으로 넣고 국수를 만든다.
麺法:麺
占實粟 をよく粉砕による水飛したのと、そば粉を細かく
小麦粉を立てて日焼け乾燥されたことを同じ分量で混ぜて麺を作る。

 

계란면(鷄卵麺)
날계란 깨트린 것 약간을 밀가루에 섞어서 반죽하여 판에다 얇게 미는
데 얇게 할수록 좋으며, 물에 삶아서 쓴다. 흑탕시(黑湯豉 : 흑탕은 짐승의 고기
를 끓인 국물)는 여러 곳에 조금씩 쓴다.
鷄卵麺
生卵の少しを小麦粉に混ぜて練って板に薄く押す
に薄くすればするほど良く、水で煮て使う。黑湯豉( 黑湯:獣の肉
を煮込んだスープ)は、複数のところに少しずつ使う。

 

육면(肉麺)
고기를 솔잎처럼 썰어서 깨끗이 씻어서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뒤집어가
며 묻혀서 물에 넣고 삶는데 장시(醬豉)를 뜨겁게 하여 채소를 넣어서 쓴
다.
肉麺
肉の松葉のように切り、きれいに洗って小麦粉 または そば粉を裏返しに
とし、つける 水に入れ、煮て 酱豉を熱くして、野菜を入れて使いて
ている。

 

세면(細麵 : 실국수)
녹두녹말 5홉을 얼음물로 반죽하여 가마솥에 넣고 젓다가 끓는 물속에
서 떠오르면 바가지에 담아서 나무젓가락 3~4개로 저어서 풀[膠]처럼 만
들고, 또 나무젓가락을 들어올려 실풀이 나오듯 하면 된다. 녹두녹말 7~8
되를 그릇에 담아서 위의 풀을 넣고 휘저어서 손으로 2~3자쯤 들어올려
끊어지지 않으면 바가지 밑에 솥발[鼎足]처럼 구멍 3개를 뚫는데, 손가락
끝이 들어갈 넓이로 한다. 왼손가락으로는 3구멍을 막은 채 바로 눈높이까
지 들어올리고 오른손으로는 바가지 치기를 멈추지 말고 곧 구멍을 열면
밑으로 흘러내린다. 끓여서 국수가 된 것은 얼음물에 담갔다가 씻어 꺼내
고 장국에도 끓여서 쓴다.
細麵
緑豆澱粉5合を氷水に練って釜に入れて 搔き回す 沸騰水中で
浮く...込め割り箸3〜4つに漕いで膠のようにつくる、また、割り箸を持ち上げて細膠とされている。緑豆澱粉7〜8
なを器に込めて、上記ののりを入れて打っても手に2〜3尺高揚
切れ目のない場合は、ひょうたんの下で鼎足のように穴3つをうがつ、指
先端が入る範囲とする。左手のリズムは、3穴を妨げられたまま、すぐにヌンノプイカ
まで持ち上げ、右手には、ひょうたんの打撃を停止したり、すぐに穴が開くと、
下フルロネリンダ。沸かして麺になったのは、氷水にダムガトダを洗って取り出して
とジャングクも沸かして使う。

 

창면(昌麪)
밀가루를 아주 곱게 펴서 여러 번 끊어 내어 물을 섞어 탄환만 하게 자
른다. 참기름에 담갔다가 꺼내서 판 위에 놓고 반 자 남짓한 대통[箭竹]으
로 아주 얇게 밀어서 칼로 길게 썬다. 양끝을 잡고 당겨서 소쿠리 위에 나
란히 늘어놓고 마르거든 저장하였다가 손님이 오면 곧 청장수(淸醬水)에
꿩고기나 닭고기를 넣어 끓여서 쓴다
昌麪
小麦粉を非常に細かく伸ばし、何度も切断を立てて水を混ぜてタンファンマンする者
ルンダ。ごま油でダムガトダを取り出し、板の上に置き、半分の文字余りの箭竹より
と非常に薄く押してナイフで長く切る。両端をつかんで引っ張ってザルの上に自分
ランヒ並べマルば保存してから客が来ればすぐにチョンジャンス(淸酱水)に
クォンゴギナ鶏肉を入れて煮込んで使う

 

진주면(眞珠麵)
기장쌀이나 메밀쌀로 밥을 지어 깨끗한 물에 씻어서 서로 붙지 않게 하
여 밀가루를 씌워 다시 삶아 익힌다. 다시 씻어서 또 위의 방법처럼 밀가
루를 씌운 뒤, 녹두녹말을 위의 방법대로 씌운다. 오이는 절였던 물에 씻
어서 소금기를 없앤 다음 채 썰고, 연한 고기 또한 잘게 써는데 진주면 크
기로 하여 기름에 볶고 각종 향채는 들깨즙[荏汁]과 섞어서 쓴다.
眞珠麵
キビやそばでご飯にされてきれいな水で洗浄してお互いに焦げ付き防止する
て、小麦粉をさせて再び煮て煮る。再洗浄してまた上記の方法のようにミルガ
塁させた後、緑豆でんぷんを上記の方法のようにかぶせる。きゅうりはジョルヨトドン水シト
て半塩水を取り外して千切りに、薄いし、また細かくソヌンデ真珠は、大き
交差道路して、油で炒めて様々な香菜は 荏汁と混ぜて使う。


만이창면(漫伊昌麪)
메밀가루나 밀가루를 물에 반죽하여 판에서 밀되 매우 얇게 풀뿌리 모
양으로 자른다. 끓여서 냉수에 맑아질 때까지 씻는다. 각종 매운 향채[辛香
菜]와 계란, 연한 고기를 모두 가늘게 썰어서 섞고, 참깨 껍질을 벗겨 즙을
내어 소금을 넣고 맛을 보아 적당하면 손님에게 내는데 맛이 토장(土醬)보
다 좋다.
漫伊昌麵
蕎麦粉や、小麦粉を水で練って板に薄く押すに非常に薄く、草の根のモー
量を切る。沸かして冷水にマルアジルまで洗う。様々な辛いヒャンチェ[辛香
菜]と卵、薄い肉の両方を細かく切り混ぜ、ゴマの皮をむいて汁
出して塩を入れて味を見ての適性と、客に出すの味の土蔵(土酱)ボー
両方ともいい。

 

토장(吐醬)
밀가루 1되와, 싸라기 1홉, 녹두가루 1홉을 물에 반죽하여 판에서 민다.
길이 2치에 너비 1치 반으로 자른 다음 대광주리에 담아 끓여서 익으면
물에 헹구어 차갑게 식힌다. 들깨즙과 간장에 여러 향채․기름진 고기․계
란․편으로 썬 표고를 음식에 넣어서 먹는다.
吐醬
小麦粉1升、サラギ1合、緑豆粉1合を水で練って板で押す。
長さ2の値に幅1値の半分に切った次のたけ篭に入れて煮込んでイクウには、
水ですすぎ涼しく冷やす。エゴマの汁と醤油で、複数の香菜。脂肪分の多い肉。鶏卵。
側に、シイタケを食べ物に入れて食べる。


 



TOTAL: 9067

番号 タイトル ライター 参照 推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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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ioka 先生席にいらっしゃいますか? interrang 2009-09-12 1325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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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ok 先生 here come.. interrang 2009-09-13 1330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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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日本人教師の証言 namgaya33 2009-09-12 1062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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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済時代も奴隷民族 韓国猿 SlaveKorea 2009-09-12 129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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