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Wildboy氏の主張

●モデルを雇ってするとか取って演出して取った日本の操作捏造汚い写真帖

●下位層でも見られる母乳授乳や家事労動する時偶然に見られる位と言っています

●胸露出は朝鮮で一般的な姿ではなくて日本人たちがあげる写真 100%は日本が大量で撮って配布した写真です敢えて一般的な姿でもなくて

 

つまり、Wildboy氏の主張は当時の朝鮮の女性の乳だしチョゴリ姿は一般的なものではなく、悪意ある日本人がモデルなどを使って捏造して大量に配布したものである。ただし一部、下位層でも見られる母乳授乳や家事労動する時偶然に見られる位と言っています

 

 

 

それでは、幾つか見てみましょう

 

 

これは、当時のフランスの新聞に掲載された風刺画です。 新聞の風刺画と言えば現在でもそうですが、誰が見ても解かることが前提で描かれます。 この絵を見たフランス人は、日本人・ロシア人・朝鮮女性を見分けられたのでしょう。

 

 

 

 

 

市場の写真です。左側の女性です。これだけでは良く解からないので、拡大してみます。

 

 

 

 

 

一番前の女性と後ろの袋を頭の上に載せた女性、それに一番後ろの甕を頭に乗せた女性の胸の辺りに注目してください。

悪意ある日本人が映画のロケ並みのセットでも組んで撮影したものでしょうか?

 

 

 

 

この写真は明らかに女の子と赤ちゃんを狙って撮影しています。後ろの女性は偶然に入ったものでしょう。

 

 

 

 

 

良く見る写真です。モデルに依頼したのでしょうか。市場の日常風景では無いですか。

 

 

 

 

 

銅像です。後ろの風景から韓国国内に置かれていることが解かりますね。

 

 

 

 

 

 

バチカンに贈られたマリア像です。贈られた方は決して卑下していないと思います。

 

 

 

 

この女性は、下位層の女性でしょうか?

 

 

 

 

 

絵にも描かれています。

 

 

 

チマチョゴリ 歴史 (Wikipedia)


朝鮮王朝の後期から妓女服の影響で丈の短いチョゴリと狭い袖が流行し、服の着脱の度に袖をほどか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になったこともあった。また19世紀からチョゴリが乳房を覆えなくなったため、両班層の女性は通常胸覆いを使ったが、下級階層、特に男児を生んだ女性は乳房を露出することもあり(李朝時代に描かれた風俗画や、李朝末期から20世紀半ばにかけての朝鮮風俗を撮った写真には、乳房を露出した女性の姿が少なからず見られる)、当然ながらこの流行は儒学者の非難を受けた。男子を出産した女性が伝統的に乳房を露出する事を日韓併合後に禁止にされ、1930年代から女性の社会進出が始まるとチョゴリの丈は再び長くなり始めた。

 

現在一般に見られるチマチョゴリは原色を使い派手な物が多い。しかし、朝鮮民族が「白衣民族」と自称してきたように、昔は普通白い服を着用し、常にその白さを保ち、かつより白くする事に非常に努力していた。この背景には朝廷による庶民に対する色付きの服の着用の制限の影響もある。ただし女性のチマはこの限りでは無く、娘と未婚女性、花嫁は赤いチマ、既婚女性や中年女性は藍色のチマ、老女はあさぎや灰色のチマを着用した。生成りの漂白されていないチマとチョゴリは主に未亡人や喪中の女性が着用した。

 

 

 

 

 

 

 

 

 

 

 

 

 

確かにモデルを雇って絵葉書用に

 

撮影したものもあったでしょう。

 

外国人には珍しく、異国情緒がありますからね。

 

 

 

 

 

 

日本側の認識

 

18世紀以降、朝鮮の女性向け民族衣装「チマチョゴリ」に変化が起きた。この頃から「長男を生んだ女性は乳房を露出する」ことが習慣化したのだ。
「乳出しチョゴリ」である。
当時の朝鮮の男尊女卑的な思想では「長男を生まない女性に価値はない」との考えが支配的なためかこのような風習が広まったのだ。
当時の朝鮮人の女性はこの衣装を「長男を生んで社会的義務を果たした」として誇りに思っていたのである。
この習慣は1950年代まで続いた(第二次世界大戦が終了したのは1945年である)。

現代の韓国人の大半がこの習慣を忘れてしまっている。
わずか50年前まで続いた習慣にも関わらずである。
50年前の習慣すら忘れてしまう韓国人の歴史観は嘘に満ちている。

 

 

 

 

 

 

 

 

 

 

 

 

 

 

自国の文化さえ日帝の蛮行になるんですね

 

 

 

 

 

 

 

 

 

 

 

 

 

 

 

 

 


가슴을 나타낸 조선 여인 진실

 

 

Wildboy씨의 주장

●모델을 고용하고 한다든가 취해 연출하고 취한 일본의 조작 날조 더러운 사진첩

●하위층에서도 볼 수 있는 모유 수유나 가사 노동할 때 우연히 볼 수 있는 정도라고 말합니다

●가슴 노출은 조선에서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주는 사진 100%는 일본이 대량으로 찍어 배포한 사진입니다 감히 일반적인 모습도 아니어서

 

즉, Wildboy씨의 주장은 당시의 조선의 여성의 젖이고 저고리 모습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악의 있는 일본인이 모델등을 사용해 날조 해 대량으로 배포한 것이다.다만 일부, 하위층에서도 볼 수 있는 모유 수유나 가사 노동할 때 우연히 볼 수 있는 정도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몇인가 봅시다

 

 

이것은, 당시의 프랑스의 신문에 게재된 풍자화입니다. 신문의 풍자화라고 하면 현재에도 그렇습니다만, 누가 봐도 아는 것이 전제로 그려집니다. 이 그림을 본 프랑스인은, 일본인·러시아인·조선 여성을 분별할 수 있었겠지요.

 

 

 

 

 

시장의 사진입니다.좌측의 여성입니다.이것만으로는 잘 알지 않기 때문에, 확대해 보겠습니다.

 

 

 

 

 

제일 전의 여성과 뒤의 봉투를 머리 위에 실은 여성, 거기에 제일 뒤의 옹을 머리에 실은 여성의 가슴의 근처에 주목해 주세요.

악의 있는 일본인이 영화의 로케 같은 수준세트에서도 짜 촬영한 것입니까?

 

 

 

 

이 사진은 분명하게 여자 아이와 아기를 노려 촬영하고 있습니다.뒤의 여성은 우연히 들어온 것이지요.

 

 

 

 

 

잘 보는 사진입니다.모델에 의뢰했는지요.시장의 일상 풍경은 아닙니까.

 

 

 

 

 

동상입니다.뒤의 풍경으로부터 한국 국내에 놓여져 있는 것이 알지요.

 

 

 

 

 

 

바티칸에 주어진 마리아상입니다.주어진 (분)편은 결코 비하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여성은, 하위층의 여성입니까?

 

 

 

 

 

그림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치마 저고리 역사 (Wikipedia)


조선 왕조의 후기부터 기생옷의 영향으로 길이의 짧은 저고리와 좁은 소매가 유행해, 옷의 착탈의 번에 소매를 풀지 않으면 안 될만큼 된 적도 있었다.또 19 세기부터 저고리가 유방을 가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양반층의 여성은 통상가슴 덮개를 사용했지만, 하급 계층, 특히 남아를 낳은 여성은 유방을 노출하기도 해(이조 시대에 그려진 풍속화나, 이조 말기부터 20 세기 중반에 걸친 조선 풍속을 찍은 사진에는, 유방을 노출한 여성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당연히 이 유행은 유학자의 비난을 받았다.남자를 출산한 여성이 전통적으로 유방을 노출하는 일을 한일합방 후에 금지로 되어 1930년대부터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면 저고리의 길이는 다시 길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치마 저고리는 원색을 사용해 화려한 것이 많다.그러나, 조선 민족이 「백의민족」이라고 자칭 해 온 것처럼, 옛날은 보통 흰 옷을 착용해, 항상 그 하얀색을 유지해, 한편보다 희게 하는 일에 매우 노력하고 있었다.이 배경에는 조정에 의한 서민에 대한 색첨부의 옷의 착용의 제한의 영향도 있다.다만 여성의 치마는 이 마지막으로는 없고, 딸(아가씨)와 미혼 여성, 신부는 붉은 치마, 기혼 여성이나 중년 여자성은 남색의 치마, 노녀는 옥색이나 회색의 치마를 착용했다.생성의 표백되어 있지 않은 치마와 저고리는 주로 미망인이나 상중의 여성이 착용했다.

 

 

 

 

 

 

 

 

 

 

 

 

 

확실히 모델을 고용해 그림 엽서용으로

 

촬영한 것도 있었겠지요.

 

외국인에게는 드물고, 이국 정서가 있으니까요.

 

 

 

 

 

 

일본측의 인식

 

18 세기 이후, 조선의 여성취향 민족 의상 「치마 저고리」에 변화가 일어났다.요즘부터 「장남을 낳은 여성은 유방을 노출한다」일이 습관화했던 것이다.
「젖내밀기 저고리」이다.
당시의 조선의 남존여비적인 사상에서는 「장남을 낳지 않는 여성에게 가치는 없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유익 과거와 같은 풍습이 퍼졌던 것이다.
당시의 한국인의 여성은 이 의상을 「장남을 낳아 사회적 의무를 완수했다」라고 하고 자랑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 습관은 1950년대까지 계속 되었다(제이차 세계대전이 종료한 것은 1945년이다).

현대의 한국인의 대부분이 이 습관을 잊어 버리고 있다.
불과 50년전까지 계속 된 습관에도 불구하고이다.
50년전의 습관조차 잊어 버리는 한국인의 역사관은 거짓말로 가득 차 있다.

 

 

 

 

 

 

 

 

 

 

 

 

 

 

자국의 문화마저 일제의 만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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