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江戸時代の慶長12年(1607年)から文化8年(1811年)にかけて、朝鮮からの親善使節である朝鮮通信使が12回来日しました。今年は第1回目(1607年)の来日から400年目になることから、朝鮮通信使(以下通信使とします)の通過した各地や通信使に同行した人物の出身地などゆかりの地において、講演会、シンポジューム、展覧会、通信使行列、饗応料理再現などが行われ、またテレビで通信使の番組も放送されます。8月25日(土)・26日(日)には下関で行われる「しものせき馬関まつり」において通信使に出した饗応料理の再現展示が予¥定されています。そこで通信使来聘の意義と饗応などについて紹介させていただきます。

 江戸時代、支配権力を握った徳川家康の政権は、豊臣秀吉の二度にわたる朝鮮侵略により断絶していた朝鮮外交の再開を重視し、また諸外国との貿易も積極的に進めようとしました。そして実現した通信使の来聘により、外交において徳川政権は国際的に認知されたことになりましたし、日本の東アジア社会での孤立は解消されました。また国内に向けては、徳川家の威容を諸大名に誇示し、華やかな通信使行列を沿道の人々に見せつけることにより人心の安定をはかりました。文化面では、通信使の滞在中に先進的な朝鮮文化を学び、間接的には中国文化に触れる機会も得られました。そして通信使の通る江戸(東京)への沿道庶民にとっては外国文化に直接触れることのできる貴重な機会でもありました。そのため来日の度毎に徳川幕府は総力をあげて一行を歓待しました。  通信使の使命は修好や将軍襲職の祝いなどでした。目的地は2回目の元和3年(1617年)には京都、文化8年には対馬、それ以外は江戸で、一行の人数は三百数十¥人から五百人でした。通信使の江戸までの行程は、7回目の天和2年(1682年)の場合、通信使船で来日した一行は、対馬、壱岐、藍島(相島)を経て赤間関(下関)から瀬戸内海に入り、大坂(大阪)に着船して、河口で川御座船に乗り換え、淀川を遡上して淀で下船し、京都、名古屋を経て江戸へ到着、江戸で使命を果たした後には往路と同じ行程をたどって帰国しました。通信使の宿泊や昼休憩には、寺院、御茶屋、本陣などがあてられ、接待は各地の御馳走人である大名が行いました。そして通信使の先導役である対馬藩主宗氏一行、京都五山僧の一行も同行しました。

一般に江戸期の国際関係は「鎖国」という言葉で知られています。
しかし実際には、オランダ・中国・朝鮮・琉球の四ケ国と交流は続けられていました。
その方法は相手国によってそれぞれ異なり、オランダ・中国とは長崎出島における通商関係にのみ限られ、琉球国は薩摩藩の属領としての扱いでした。
こういった中、徳川将軍と国王が互いに国書を交換しあう、対等の友好国として交わっていたのが朝鮮国です。
いわばわが国にとって唯一の、正式な「将軍の外交」だったわけで、朝鮮国王より将軍に対して「信を通じる=友好のあかし」使節として遣わされたのが通信使でした。
慶長12年(1607)以来、文化8年(1811)まで12回にわたって通信使は来日しますが、一行の人数は、毎回300〜500人の大使節団からなりました。
その中心は、李朝朝鮮政府が選び抜いた優秀な官僚たちで、随行員には美しく着飾った小童・その芸に秀でた楽隊・画員(絵師)・武官・医師・通訳などが加わっていました。
行く先々での応対は各大名が受け持ち、一行の警護役は往路・復路ともに終始対馬藩が担当しました。
対馬藩に仕える儒者・雨森芳洲も第8・9次通信使に随伴し、さまざまな折衝にあたりました。

 

 

 

 


【성실한】조선 통신사

에도시대의 게이쵸 12년(1607년)부터 문화 8년(1811년)에 걸치고, 조선으로부터의 친선 사절인 조선 통신사가 12회 일본 방문했습니다.금년은 제1회째(1607년)의 일본 방문부터 400년째가 되는 것부터, 조선 통신사(이하 통신사로 합니다)의 통과한 각지나 통신사에 동행한 인물의 출신지 등 연고의 땅에 있고, 강연회, 신포쥬무, 전람회, 통신사행렬, 향응요리 재현등이 행해져 또 텔레비전으로 통신사의 프로그램도 방송됩니다.8월 25일(토)·26일(일)에는 시모노세키에서 행해지는 「하지도 태워 나무 바칸 축제」에 대해 통신사에 낸 향응요리의 재현 전시가 예정 되고 있습니다.거기서 통신사 와 빙의 의의와 향응등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에도시대, 지배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권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두 번에 걸치는 조선 침략에 의해 단절하고 있던 조선 외교의 재개를 중시해, 또 여러 나라와의 무역도 적극적으로 진행하려고 했습니다.그리고 실현된 통신사의 와 빙에 의해, 외교에 대해 토쿠가와 정권은 국제적으로 인지된 것이 되었고, 일본의 동아시아 사회로의 고립은 해소되었습니다.또 국내로 향해서는, 토쿠가와가의 위용을 제오나에 과시해, 화려한 통신사행렬을 길가의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것으로 인심의 안정을 도모했습니다.문화면에서는, 통신사의 체제중에 선진적인 조선 문화를 배워, 간접적으로는 중국 문화에 접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통신사가 통과하는 에도(도쿄)에의 길가 서민에게 있어서는 외국 문화에 직접 접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그 때문에 일본 방문의 때마다 토쿠가와막부는 총력을 주어 일행을 환대 했습니다. 통신사의 사명은 수호나 장군 습직의 축하등에서 했다.목적지는 2번째의 겐나 3년(1617년)에는 쿄토, 문화 8년에는 대마도, 그 이외는 에도에서, 일행의 인원수는 3백 수십인으로부터 5백명이었습니다.통신사의 에도까지의 행정은, 7번째의 에도초기의 연호 2년(1682년)의 경우, 통신사선으로 일본 방문한 일행은, 대마도, 이키, 아이노시마(아이시마)를 거쳐 아카마가세키(시모노세키)로부터 세토나이카이로 들어가, 오오사카(오사카)에 착선 하고, 하구에서 강배로 갈아 타 요도가와를 소상해 요도에서 하선해, 쿄토, 나고야를 거쳐 에도에 도착, 에도에서 사명을 완수한 후에는 왕로와 같은 행정을 더듬어 귀국했습니다.통신사의 숙박이나 낮휴식에는, 사원, 오치야야, 혼진등이 충당되어 접대는 각지의 진수성찬(대접)인인 오나가 실시했습니다.그리고 통신사의 선도역인 쓰시마번주소시 일행, 쿄토 오대산승려의 일행도 동행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에도기의 국제 관계는 「쇄국」이라고 하는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네델란드·중국·조선·류큐의 시카국으로 교류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방법은 상대국에 의해서 각각 달라, 네델란드·중국과는 나가사키 데지마에 있어서의 통상 관계에게만 한정되어 류큐국은 사츠마 번의 속령으로서의 취급이었습니다.
이러한 나카, 토쿠가와 장군과 국왕이 서로 국서를 서로 교환하는 , 대등의 우호국으로서 사귀고 있던 것이 조선국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나라에 있어서 유일한, 정식적 「장군의 외교」였던 것으로, 조선 국왕보다 장군에 대해서 「신을 통한다=우호의 증거」사절로서 보내진 것이 통신사였습니다.
게이쵸 12년(1607) 이래, 문화 8년(1811)까지 12회에 걸쳐서 통신사는 일본 방문합니다만, 일행의 인원수는, 매회 300~500명의 대사절단으로부터 되었습니다.
그 중심은, 이조 조선 정부가 선택해 뽑은 우수한 관료들로, 수행원에게는 아름답게 몸치장한 꼬마·그 재주에 뛰어난 악대·화원(화가)·무관·의사·통역등이 더해지고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의 응대는 각 오나가 맡아, 일행의 경호역은 왕로·귀로 모두 시종 쓰시마번이 담당했습니다.
쓰시마번을 시중드는 유생·아메모리 칸바시주도 제8·9차 통신사에 수반 해, 님 자리?`와인 절충에 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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