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ねつ造」と主張するからにはそれなりの根拠がいります。

 

ここに一冊の雑誌があります。

 

 

 「写真週報」とは、1938年から太平洋戦争の終結まで、日本政府により刊行された週刊の写真雑誌です。日本政府の政策を紹介し、国民を啓蒙することと、対外的な広報宣伝の役割を担っていました。

 

 上の写真は1939年8月30日発行の第80号で、「内鮮挙つて日の丸のもと」というタイトルがついています。韓国併合から29年が経ち、日の丸のもとに朝鮮で全力を挙げて進めてきた近代化の成果を誇示しようとしています。

 

 実はここの記事の中に面白い写真があります。

 

 

 右のページの真ん中の黄緑の線で囲まれた写真を見てください。

 

 写真を紹介する記事には「併合当時(明治43年)の南大門」と書かれています。これと左上の写真の「施政29年朝鮮京城府の中心地南大門」と比較して、日本が朝鮮を近代化した成果を説明しています。

 

 しかし、これは変です。ここの住人さんたちなら、もうお分かりでしょう(笑)

 

 「併合当時(明治43年)の南大門」と説明された写真は下の写真です。

 

 

 インターネットでよくみかける写真で、エンコリでは「親日派のための弁明」というスレで紹介されたようです。「1897年のSeoul南大門大通り」と説明されていましたが、確認はとれませんでした。

 

 確認はとれませんでしたが、1900年前後の写真だと思います。次の写真と比較してください。

 

 

 こちらは1888年から1892年の間に撮影された南大門の写真です。インターネットの「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アーカイブポータル」の「朝鮮国真景」で拾えます。この本は当時の写真が綺麗に残っていて、歴史好きにはお薦めです(笑)

 

 

 こちらは、あの朝日新聞社(笑)の「ろせった丸満韓巡遊紀念写真帳」より1906年に撮影された南大門の写真です。この頃には既に門の両側の壁が取り壊されているようですね。

 

 

 こちらは1910年7月発行の「韓国写真帖」に掲載された南大門の写真です。韓国併合後は「大日本帝国朝鮮写真帖」と名前を変えて発行しています。韓国併合以前に周辺整備も終わっていたようです。

 

 以上の写真資料を比較して、「写真週報」にある「併合当時(明治43年)の南大門」の写真の説明は事実と違うことが分かると思います。

 

 これが歴史のねつ造ですね(笑)。

 

【おまけ】

 

 この「写真週報」に使われた写真の出典が未だにわかりません。なぜ政府はこの写真を使ったのか。あまり有名な写真ではウソ¥がばれてしまいます。合成写真かとも考えましたが、記事の元の写真が破棄されずに残っていることを考えるとその可能¥性も薄いでしょう。

 

 個人的にはそこに歴史のロマンを感じるのですが、もし分かった人がいたら教えてください。


역사의 조작과는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이상 그만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1권의 잡지가 있습니다.

 

 

 「사진 주보」란, 1938년부터 태평양전쟁의 종결까지, 일본 정부에 의해 간행된 주간의 사진 잡지입니다.일본 정부의 정책을 소개해, 국민을 계몽 하는 것으로, 대외적인 홍보 선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1939년 8월 30일 발행의 제80호로, 「 내선거연줄 일장기의 아래」라고 하는 타이틀이 붙어 있습니다.한국 병합으로부터 29년이 지나, 일장기의 아래에서 조선에서 전력을 다해서 진행해 온 근대화의 성과를 과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실은 여기의 기사안에 재미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오른쪽의 페이지의 한가운데의 황록의 선으로 둘러싸인 사진을 봐 주세요.

 

 사진을 소개하는 기사에는 「병합 당시 (메이지 43년)의 남대문」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이것과 좌상의 사진의 「시정 29년 조선 경성부의 중심지 남대문」이라고 비교하고,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 한 성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합니다.여기의 거주자씨들이라면, 이제(벌써) 분 빌려지요 (웃음)

 

 「병합 당시 (메이지 43년)의 남대문」이라고 설명된 사진은 아래의 사진입니다.

 

 

 인터넷으로 잘 보는 사진으로, 엔코리에서는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라고 하는 스레로 소개된 것 같습니다.「1897년의 Seoul 남대문 큰 길」이라고 설명되고 있었습니다만, 확인은 취할 수 있었습니다.

 

 확인은 취할 수 있었습니다만, 1900 년 전후의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다음의 사진과 비교해 주세요.

 

 

 이쪽은 1888년부터 1892년간에 촬영된 남대문의 사진입니다.인터넷의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어카이브(archive) 포털」의 「조선국진경」으로 주울 수 있습니다.이 책은 당시의 사진이 깨끗이 남아 있고, 역사를 좋아하게는 추천입니다 (웃음)

 

 

 이쪽은, 그 아사히 신문사 (웃음)의 「다툰 환만한순유 기념 사진첩」보다 1906년에 촬영된 남대문의 사진입니다.요즘에는 이미 문의 양측의 벽이 해체되고 있는 것 같네요.

 

 

 이쪽은 1910년 7월 발행의 「한국 사진첩」에 게재된 남대문의 사진입니다.한국 병합 후는 「대일본 제국 조선 사진첩」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발행하고 있습니다.한국 병합 이전에 주변 정비도 끝나 있던 것 같습니다.

 

 이상의 사진 자료를 비교하고, 「사진 주보」에 있는 「병합 당시 (메이지 43년)의 남대문」의 사진의 설명은 사실과 다른 것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조작이군요 (웃음).

 

【덤】

 

 이 「사진 주보」에 사용된 사진의 출전을 아직도 모릅니다.왜 정부는 이 사진을 사용했는가.너무 유명한 사진에서는 거짓말이 발각되어 버립니다.합성 사진일까하고도 생각했습니다만, 기사의 원래의 사진이 파기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 가능성도 얇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거기에 역사의 로망을 느낍니다만, 만약 안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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