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中国政府の高句麗社(高句麗史) 歪曲は単純にうちの韓民族(韓民族)のアイデンティティのみを毀損するのではない. 私たちが独立的な株券を持たなければならない名分と権利さえ剥奪されるようになる中国の悪い陰謀と計略であることだ. 古代王国高句麗は私たちにおいて民族的自尊心と同時に, 唯一の自慢の種だ. 新羅の同族裏切りで大帝国だった高句麗は消えた.

いや高句麗は消えなかった. 今日にも私たち胸の中に高句麗は生きて呼吸している. そんな高句麗を悪辣な中国漢族(漢族)たちは自国の歴史と言い張っている.

早く白岩(白巌) 朴殷植(朴殷植) 先生は歴史のない民族は魂がない民族だと言った. そうだ! 歴史がなければ民族の未来もない. そうだから私たちは我が民族の歴史である高句麗社(高句麗史)を中国の歴史侵略から守って守護しなければならない.


고구려사(高句麗史)를 한국 역사로 규정해야 하는 이유

 

 

중국 정부의 고구려사(高句麗史) 왜곡은 단순히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정체성만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독립적인 주권을 가져야 하는 명분과 권리마저 박탈당하게 되는 중국의 못된 음모와 계략인 것이다. 고대 왕국 고구려는 우리에게 있어 민족적 자존심이자, 유일한 자랑거리이다. 신라의 동족배반으로 대제국이었던 고구려는 사라졌다.

아니 고구려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우리들 가슴 속에 고구려는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런 고구려를 악랄한 중국 한족(漢族)들은 자국의 역사라고 우기고 있다.

일찌기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 선생은 역사가 없는 민족은 혼이 없는 민족이라고 했다. 그렇다! 역사가 없으면 민족의 미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인 고구려사(高句麗史)를 중국의 역사침략으로부터 지키고 수호해야 한다.

①고구려의 구성 종족은 예맥족

고구려를 세운 민족은 맥족(貊族)으로 흔히 예맥족(濊貊族)으로 알려진 족속이다. 『후한서(後漢書)』고구려전(高句麗傳)을 보면 "(고)구려(句麗)는 일명 맥이(貊耳)이다. 따로 별종이 있어 작은 물가에 의지하여 살아 소수맥(小水貊)이라 불린다. 좋은 활을 생산하는데 맥궁이 바로 이것이다" 후한서를 보면 알 수 있듯 고구려를 세운 종족은 맥족임을 알 수 있다. 예맥족은 고대 동이족(東夷族)의 일파로 화하족(현 중국민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민족이었다. 동이족은 "동방의 큰 활을 쏘는 민족"이라는 뜻으로 고대 중국인들은 동이족을 두려워하고 군자의 나라라고 경외해왔다. 동이족의 일파 중 고이(高夷)라는 종족이 있는데 혹자는 이 고이가 고구려의 전신이라고 주장한다. 예맥족은 예족(濊族)과 맥족(貊族)으로 구성된 종족인데, 예족은 고조선과 신라를 세운 종족이고, 맥족은 부여와 고구려, 백제를 세운 종족으로 이들이 한민족의 직계조상이라고 한다. 중국인을 형성한 종족인 화하족과 고구려 아니 한민족(韓民族)을 형성한 동이족 좁게는 예맥족은 본래 근본이 다른 민족이므로 고구려사(高句麗史)는 중국의 역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라 할 수 있다.

②중국 동북부와 한반도는 같은 문화권

고구려가 위치한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 중북부 지방은 본래 같은 문화권이었다. 고조선의 유물인 비파형 동검과 미송리식 토기가 만주지역과 한반도 중북부 지역에 출토된다는 것과, 한반도 중북부와 만주지역의 고구려 성터 유적이 중국의 것과 별개라는 점, 고조선의 준왕이 마한에 망명하여 마한의 왕이 되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만주지역과 한반도는 비슷한 생활 문화권이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전통이 삼국시대에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③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

우리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1차 사료를 꼽자면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들 수 있다(하지만 필자는 삼국사기 보다 한단고기(桓檀古記)를 우리 역사의 1차 사료로 들고 싶다.). 삼국사기는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이다. 만약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면 굳이 삼국사기가 고구려의 역사를 기록했을까?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서에 기록된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런 기본적인 상식조차 모르는 무식한 인간들인가? 고구려의 역사를 남겼다는 것은 당시 우리 민족은 고구려사를 우리의 역사라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④삼국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비슷

고구려와 백제 또는 고구려와 신라의 사신이 서로 통역했다는 기록이 없고, 또한 고구려(高句麗) 장수태왕(長壽太王) 때 백제(百濟) 개로왕(蓋鹵王)의 신하인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이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 투항했다는 것과 도림이 쉽게 개로왕에 접근했다는 점, 신라의 거칠부가 고구려를 염탐하러 갔을 때 아무 꺼리낌 없이 의사소통을 했다는 점에서 삼국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비슷했다고 보여진다. 물론 우리나라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는 걸로 보아 삼국의 언어는 지금보다 복잡한 사투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언어의 뿌리가 같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었을 것으로 주정된다.

『후한서(後漢書) 권 85 고구려(高句麗) 편』

"동이족들은 서로 전하기를 부여의 별종인 까닭에 언어와 법제가 많이 같다고 한다"

『삼국지(三國志) 권30 고구려 편』

"동이의 옛 말에 부여의 별종이라 하여 언어와 여러 일들이 부여와 더불어 같다"

『양서(梁書) 권54 고구려 편』

"언어와 여러 일들이 부여와 같은데 그 성질과 의복은 다른데가 있다"

『후한서 권85 동옥저(東沃沮) 편』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같다"

『삼국지 권30 옥저(沃沮) 편』

"그 언어는 고구려와 더불어 대부분 같고 때때로 약간 다르다"

『후한서 권85 예(濊) 편』

"늙은이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한다. 언어와 법속이 대개 서로 유사하다"

『삼국지 권30 예 편』

"언어와 법속이 대개 고구려와 같다"

『양서(梁書) 권54 신라(新羅) 편』

"(신라의) 언어는 백제를 기다린 뒤에야 (중국과) 통한다"

『양서 권54 백제(百濟) 편』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대개 고구려와 같은데 다닐 때 두 손을 맞잡지 않고 절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 점이 다르다"

『남사(南史) 권79 백제 편』

"언어와 복장은 대개 고구려와 같다"

중국 사서들을 보면 예(濊), 맥(貊), 부여(夫餘), 고구려, 옥저(沃沮), 진한(辰韓), 변한(弁韓), 백제, 신라의 언어가 같다고 나오고, 물길(勿吉), 읍루(邑婁)가 상이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사서들을 종합해 볼 때 삼국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그 뿌리가 비슷하므로 의사소통에 별 지장이 없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⑤고구려와 수, 당 간의 전쟁

만약, 고구려가 중원 왕조의 일개 지방정권이라면 고구려와 수(隨), 당(唐) 간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도 113만 대군, 50만 대군 등 엄청난 군사를 동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와 수, 당이 싸운 것, 그것도 엄청난 군사를 동원하여 싸웠다는 것은 고구려가 중국의 일개 지방정권이 아닌 당당한 자주국가, 중국과 대등한 제국(帝國)이었음을 뜻한다. 일찍이 당황(唐皇) 태종(太宗)은 고구려를 자기(당)들과 비슷한 수준의 학문을 지닌 문명국이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이는 고구려가 중국에 뒤지지 않는 대국임을 말해준다. 만약 고구려가 중원 왕조의 지방정권이라면 중국과 대등한 수준의 학문을 구사할 수 있었을까? 영류왕(榮留王) 때 당의 사신으로 고구려에 파견된 이의침이 고구려 국왕이 부르자 엎드려 기어가서 절하고 다시 엎드려 국서를 전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기록은 고구려가 중원 왕조의 일개 지방정권이 아닌 중원을 통일한 수, 당 조차 두려워 한 대제국(大帝國)이었음을 알려준다.

⑥고구려가 활동한 시기 중국의 고구려에 대한 인식

고구려사가 어느 나라의 역사에 귀속되는지에 중요한 것은 고구려가 활동하던 시기 주변 국가들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가 활동한 시기 중국 역사서를 보면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라 포함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구려를 백제, 신라, 가야, 부여와 함께 따로 동이전이라는 항목에 분류, 기술하였다. 이것은 그 당시 중국인들의 고구려 인식을 보여주는 증거로 이들은 고구려를 자국(중국)과 같은 민족이라기보다는 동이족, 정확히는 백제, 신라와 같은 민족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⑦고구려 중심의 천하관

고구려는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고구려가 중원 왕조의 일개 지방정권이라면 고구려는 자국 중심의 천하관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가 자국 중심의 천하관을 가졌다는 것은 고구려가 중국의 종속국이 아닌 중국과 대등한 국가임을 뜻한다. 고구려 천하관 내에서 고구려는 북연(北燕), 백제, 신라, 가야, 동부여(東夫餘), 거란(契丹), 말갈(靺鞨), 실위(室韋), 지두우(地豆于), 일본(倭國) 등에게 조공을 받고, 이들에게 분봉을 내려주는 황제국(皇帝國=太王國)과 같다. 고구려와 수, 당의 대결은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과 중국 중심의 천하관 간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고구려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는 것(廣開土好太王: 永樂, 長壽太王: 建興)을 보면 고구려가 자주국가임을 증명한다 할 수 있다.

고구려의 천하관과 중국의 천하관은 상당히 다르다. 중국은 자신들의 천하관만 인정하는데 비해 고구려는 자국의 천하관과 함께, 다른 지역의 천하관과 공존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즉, 고구려는 고구려 지역인 1차 천하관, 고구려의 속국들까지 포함하는 2차 천하관, 그리고 병립하는 몇 개의 천하로 구성되는 동아시아 전체를 3차 천하관으로 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구려는 자신들의 천하관을 독자적으로 세움과 동시에 다른 지역의 천하관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성격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고구려야말로 진정한 천하관을 가진 천자국이라 할 수 있다.

⑧단군 신화와 추모왕 신화의 모티브가 비슷

우리 민족의 국조인 단군왕검(檀君王儉)의 탄생을 기록한 단군 신화와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鄒牟王=東明聖王)의 탄생을 기록한 주몽(朱蒙) 설화를 보면 두 신화의 모티브가 비슷함을 볼 수 있다. 단군 신화에서 단군은 천신족(환웅)과 지신족(웅녀)의 결합, 즉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과 지신 웅녀(땅의 어원을 곰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의 결합으로 탄생했다. 즉 이주민과 토착민의 융합으로 단군, 즉 조선이 건국된 것과 같이 추모는 천신족과 수신족 정확히 말하면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와 수신(水神) 하백의 딸 유화의 결합으로 탄생하였는데 추모가 성장해서 부여를 도망쳐(이주세력) 졸본곡에 이르러 재사, 무골, 묵거(토착세력)등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세운다는 모티브가 단군신화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고구려와 고조선은 많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⑨고구려 멸망 후 보장왕이 조선군왕에 임명

고구려 멸망 후 당은 고구려 유민들에게 소위 기미정책이라며, 고구려 유민들의 저항을 분쇄시키기 위해 보장왕(寶藏王)을 조선군왕(朝鮮君王)에 임명하여 고구려 유민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여기서 당(唐)이 보장왕을 조선군왕에 임명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망한 고구려의 국왕에게 고려군왕(高麗君王)이 아닌 조선군왕(朝鮮君王)의 칭호를 내렸다는 것은 고구려가 고구려 이전에 존재했던 단군조선(檀君朝鮮)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적어도 고구려가 고조선의 후신(後身)이라고 당시 당나라의 사람들이 인식했던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출처; 정신문화사 編 "은폐된 한국 고대사의 진실" (이문규 著, 2002년 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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