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以前EnjoyKorea内において、

単なる鋳鉄を、「高温によって、直接取り出した鉄であり」

「1500℃高温で製鉄した、朝鮮の製鉄時術は先進的であった」という

トンデモ説が主張された。

1500℃という根拠はなく、いつものパターンであった。

 

鉄の分類

 

■炭素含量による、鉄の性質の変化

 

鋳鉄(炭素量2%以上)    融けやすく鋳造が容易、耐摩耗性に優れる
鋼(炭素量0.1〜1.7%) 硬い、刃物や工具に適している 
軟鉄(炭素量0.02%以下) 柔らかい、展延性に優れる 針金などになる


■金属の一般的な性質

 

純粋な単金属は、融点が高い、そして柔らかい
不純物を含む金属は、融点が低い、そして硬い


 


 

 

■古代における一般的な製鉄方法

 

鉄鋼石から「硫黄」を取り除く
この作業は、鉄鋼石を「焼く」事で実現する。

温度は400-800℃、硫黄分が取れて、炭素分が少ない「錬鉄」が出来上がる
※1500℃無くとも「鉄」はできる

 

しかし、このままでは「不純物」が多く含まれているので、
赤く、熱している間に、叩いて、「鍛える」事によって、鉄の分子を結合させ強くしていく
また、炭素で包み「炭素」を含ませて、鋼を作る

 

 

鍛冶屋が鉄をハンマーで叩いているのは、このようにして「不純物」を取り除いていたのですね。

 


 

■朝鮮鉄の主張

以上の基本的な部分を確認した上で、朝鮮鉄の技術について検証してみよう

http://www.enjoykorea.jp/tbbs/read.php?board_id=phistory&nid=106444&start_range=106426&end_range=106444

要約


炭素含量が少ない鋼鉄は銑鉄と酸化剤を利用して作る

朝鮮鉄は炭素含量0.06である

炭素含量が少ない1.0未満の場合、1500度以上の温度が必要

よって、軟鉄や銑鉄を叩いて作ったのではなく、直接熔解して作った。

鋼鉄は高温の溶炉で直接得た良質の物で世界どこでも確保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技術だった.
その連帯もおおよそB.C. 12世紀にさかのぼる.


 

 

疑問点:
熔解して作ったのであれば、元のスレッドの書き込みにあるように、炉の温度を1500℃を超え無ければならない。
しかし、具体的な方法が何も示されていない。

世界の常識では、高炉を使う方法は、14世紀にドイツのライン河流域で始まったとされていて、「風を送る装置」に「水車」などを使っておこなった。

 

朝鮮が水車の実用化に失敗した記録が残っていますねw

 

 


疑問点:
熔解して作られる鉄は、一般に「炭素を多く含む」、これは鉄が熱せられると、活発に「炭素を吸収するから」である。
※炭素を吸収させることで、鉄の融点を下げて、1200℃程度で溶かす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


 

鉄を叩くことなく、どのようにして、この鉄にまれた「炭素」を取り除いたのか?

 

 

 

 

結論:


韓半島の鋼鉄は高温の溶炉で直接得た良質の物<ありえません(笑い)


 


 


■製鉄の歴史 続き
朝鮮の現実とは関係ないところで製鉄の技術は進化していきます

14世紀の高炉の発明によって、鉄を大量に生産する事が可能¥になったが、大量の木材を必要とした。
この為、石炭を使う事が研究された。

石炭を使うと、石炭は高温で軟化溶融して空気循環をさまたげ還元反応を停滞させるという問題
硫黄を含むという問題があった。

そこでコークスを使い、硫黄の問題などを解決が図られた。

コークスは石炭より燃えにくいので、更なる送風装置が必要となった。
そこで、蒸気機関(cf.ニューコメンの蒸気機関の発明は1712年、ジェームズ・ワットによる蒸気機関の改良は1769年)が製鉄に使われるようになる。


■熱風の利用
送り込む風を最初から熱風にして送り込む技術が、1828年イギリスのジェームス・ニールソ¥ンによって実現される


■高炉鉄の問題点
炭素を鉄の中に多く含むようになり、これをどのようにして取り除くか研究が進む

 

■反射炉とパドル法(1783年)
反射炉とは、火床で石炭を焚き、その火焔を火橋を越えてとなりの熔解室に導き、
反射熱で高温にして装入された鋳鉄を溶かすものである。
石炭を鋳鉄と接することなく燃焼させて石炭の持つ不純物が鉄に混入することを防ぐ方法。


■ベッセマー転炉(1856年)酸性炉材
イギリス人ヘンリ・ベッセマーは銑鉄と過剰空気の反応を詳しく調べて、熔けた銑鉄にそのまま空気を吹き込めば、
燃料の熱源なしに、銑鉄中の炭素やケイ素を燃焼除去できることを発見した。
そして、その着想を用いた転炉の開発に取りかかった。転炉(converter)とは銑鉄を鋼に転化convertする炉という意味である。


ベッセマーの方法は革新的で偉大な方法であったが、欧州産の大部分の鉱石(リンや硫黄を含む)では良質の鋼は得られなかった

 

■トーマス転炉(1879年)塩基性炉材
塩基性の石灰によってリンを取り除く事を研究
石灰は炉壁のケイ酸とも激しく反応して炉壁がたちまち破壊してしまう。
そのため炉壁に石灰石、マグネサイト、ドロマイトなどから製造した塩基性の耐火材を使用する必要があった。
それらの物質は脆くてすぐボロボロになってしまう。それらから耐久性のある耐火材をつくることはきわめて困難であった。
彼はドロマイト(炭酸カルシウムの鉱石)を従来以上の高温で焼いてクリンカーにし、石炭タールを接着剤に使用してこの難問を解決した。
こうして塩基性耐火材が工業界に誕生し、塩基性転炉法が確立した。


 

 

溶鉱炉の温度を上げるためには、このような技術の積み重ねが必要です。

古代において、このような技術を、朝鮮だけが確立することは、不可能¥でしょう。

 


철의 역사

이전 EnjoyKorea내에 있고,

단순한 주철을, 「고온에 의해서, 직접 꺼낸 철이며」

「1500℃고온으로 제철한, 조선의 제철시 방법은 선진적이었다」라고 한다

톤 데모설이 주장되었다.

1500℃이라고 하는 근거는 없고, 평소의 패턴이었다.

 

철의 분류

 

■탄소 함량에 의한, 철의 성질의 변화

 

주철(탄소량 2%이상) 녹기 쉽게 주조가 용이, 내마모성이 뛰어난다
강철(탄소량 0.1~1.7%) 딱딱한, 칼날이나 공구에 적절하고 있다 
연철(탄소량 0.02%이하) 부드러운, 전연성이 뛰어나는 철사 등에 된다


■금속의 일반적인 성질

 

순수한 단금속은, 융점이 비싼, 그리고 부드럽다
불순물을 포함한 금속은, 융점이 낮은, 그리고 딱딱하다


 


 

■고대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제철 방법

 

철강석으로부터 「유황」을 없앤다
이 작업은, 철강석을 「굽는다」일로 실현된다.

온도는400-800℃, 유황분을 잡히고, 탄소분이 적은 「연철」이 완성된다
※1500℃없어도 「철」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대로는 「불순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붉고, 가열하고 있는 동안에, 두드리고, 「단련한다」일에 의해서, 철의 분자를 결합시켜 강하게 해 나간다
또, 탄소로 싸 「탄소」를 포함하게 하고, 강철을 만든다

 

 

대장간이철을 해머로 두드리고 있는것은, 이와 같이 해 「불순물」을 없애고 있었군요.

 


■조선철의 주장

이상의 기본적인 부분을 확인한 다음, 조선철의 기술에 대해 검증해 보자

http://www.enjoykorea.jp/tbbs/read.php?board_id=phistory&nid=106444&start_range=106426&end_range=106444

요약


탄소 함량이 적은 강철은 무쇠와 산화제를 이용해 만든다

조선철은 탄소 함량 0.06이다

탄소 함량이 적은 1.0 미만의 경우, 1500도 이상의 온도가 필요

따라서, 연철이나 무쇠를 두드려 만든 것은 아니고, 직접 용해해 만들었다.

강철은 고온의 용광로에서 직접 얻은 양질의 물건으로 세계 어디에서라도 확보할 수 없었던 기술이었다.
그 연대도 대체로 B.C. 12 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문점:
용해해 만든 것이면, 원의 스렛드의 기입에 있도록(듯이), 노의 온도를 1500℃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이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세계의 상식에서는, 용광로를 사용하는 방법은, 14 세기에 독일의 라인 하류역으로 시작되었다고 여겨지고 있고, 「바람을 보내는 장치」에 「물방아」등을 사용해 행했다.

 

조선이 물방아의 실용화에 실패한 기록이 남아 있네요 w

 

 


의문점:
용해해 만들어지는 철은, 일반적으로 「탄소를 많이 포함한다」, 이것은 철이 가열되면, 활발하게 「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이다.
※탄소를 흡수시키는 것으로, 철의 융점을 내리고, 1200℃정도로 녹일 수 있게 된다


 

철을 두드리는 일 없이, 어떻게 하고, 이 철「탄소」를 없앴는가?

 

 

 

 

결론:


한반도의 강철은 고온의 용광로에서 직접 얻은 양질의 물건<있을 수 없습니다(웃음)


 



■제철의 역사 계속
조선의 현실과는관계없는 곳에서제철의 기술은 진화해 갈 것입니다

14 세기의 용광로의 발명에 의해서, 철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이 되었지만, 대량의 목재를 필요로 했다.
이 때문, 석탄을 사용하는 것이 연구되었다.

석탄을 사용하면, 석탄은 고온으로 연화 용해 해 공기 순환을 장애 환원 반응을 정체시킨다고 하는 문제
유황을 포함한다고 하는 문제가 있었다.

거기서 코크스를 사용해, 유황의 문제등을 해결이 도모해졌다.

코크스는 석탄보다 불타기 어렵기 때문에, 한층 더 송풍 장치가 필요했다.
거기서, 증기 기관(cf.뉴코멘의 증기 기관의 발명은 1712년, 제임스·와트에 의한 증기 기관의 개량은 1769년)이 제철에 사용되게 된다.


■열풍의 이용
보내는 바람을 최초부터 열풍으로 해 보내는 기술이, 1828년 영국의 제임스·니르소에 의해서 실현된다


■용광로철의 문제점
탄소를 철안에 많이 포함하게 되어, 이것을 어떻게 해 없앨까 연구가 진행된다

 

■반사로와 패들법(1783년)
반사로란, 화상으로 석탄을 피워, 그 화염을 화교를 넘어 옆의 용해실에 이끌어,
반사열로 고온으로 해 장입 된 주철을 녹이는 것이다.
석탄을 주철과 접하는 일 없이 연소시키고 석탄이 가지는 불순물이 철에 혼입하는 것을 막는 방법.


■벳세마 전로(1856년) 산성로재
영국인 헨리·벳세마는 무쇠와 과잉 공기의 반응을 자세하게 조사하고, 용자리수 무쇠에 그대로 공기를 불어오면,
연료의 열원없이, 무쇠중의 탄소나 규소를 연소 제거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착상을 이용한 전로의 개발에 착수했다.전로(converter)와는 무쇠를 강철에 전화 convert 하는 노라고 하는 의미이다.


벳세마 방법은 혁신적으로 위대한 방법이었지만, 유럽산의 대부분의 광석(인이나 유황을 포함한다)에서는 양질의 강철은 얻을 수 없었다

 

■토마스 전로(1879년) 알칼리성로재
알칼리성의 석회에 의해서 인을 없애는 일을 연구
석회는 노벽의 규산과도 격렬하게 반응해 노벽이 금새 파괴해 버린다.
그 때문에 노벽에 석회석, 마그네사이트, 드로마이트등에서 제조한 알칼리성의 내화재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물질은 무러 곧 너덜너덜이 되어 버린다.그것들로부터 내구성이 있는 내화재를 만드는 것은 극히 곤란했다.
그는 드로마이트(탄산칼슘의 광석)를 종래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 크린 카로 해, 석탄 타르를 접착제에 사용해 이 난문을 해결했다.
이렇게 해 알칼리성 내화재가 공업계에 탄생해, 알칼리성 전로법이 확립했다.


 

용광로의 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술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고대에 있고, 이러한 기술을, 조선만이 확립하는 것은, 불가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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