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渡来人と弥生人についてつれづれを書きます。

 

○ 縄文・弥生系


1.縄文人


 縄文人については、北方系説と南方系説があるが、Gm遺伝子によると北方系でバイカル湖畔に住むブリアート族に近いそうだ。ブリアート族は、モンゴル族と違い暖かい家に住んでいるために目が大きいなど南方系の特徴を持っている。


2.出雲族(弥生人)


 弥生人として、中国江南地方から来た越族である。それは、ベトナムと同じ船を使った伝統の競技が、出雲にもあることからも判る。出雲族は、出雲地方だけではなく大和を含めた広い地域に住んでいた。日本では、10月のことを神無月と言う。ただ、出雲のみが神有月と言う。この場合の神とは、部族長のことである。つまり10月に日本中の部族長が出雲に集まったことを意味する。


3.倭奴国


 倭奴国も海洋民族であり、出雲族と同系統と思われるが、九州北部にあり大陸と近いため、国際外交や最新の文化を取り入れた先進国であった。


○ 渡来人


 ここでは、天孫族をすべて渡来人とする。(ニギハヤヒの物部氏も渡来人とする)

 

1.出雲国譲り


 出雲は、天孫族に国譲りしたが、本格的に圧力がかかるのは、崇神天皇60年の物部氏によって、出雲の神宝が奪われる事件のあとだ。一方、国譲りのときに戦ったタケミナカタ神は、長野の諏訪まで落ち延び、さらにタケミナカタ神を祀る諏訪神社は、関東を中心に4500箇所あり、かえって子孫は繁栄したといえる。


2.神武天皇、物部氏


 最初に物部氏が九州から大和に移り、銅鐸文化圏を形成した。出雲族とは共存した。次に神武天皇が九州から大和に移り、物部氏とは共存するが、反対した出雲族のトミノナガスネヒコを殺してしまう。


3.スサノオノミコト = ツヌガアラヒト = (アメノヒボコ?)


 スサノオノミコトとツヌガアラヒトは、ともに牛の頭をした牛族である。ツヌガアラヒトは、あまり知られていないが、地名の敦賀の語源である。これら、牛族は、中国で類似のものを探すとミャオ族の祖先で中国の三皇の黄帝と戦ったシユウがある。ミャオ族というと長江文明の担い手と思われているが、違うのではないかという説がある。それは、シユウが北京市より海側の所で黄帝と決戦をしたからである。ミャオ族はもともと黄河下流で畑作をやっていて、黄帝にやぶれて、長江中流域に行き、さらに圧迫されて雲南省に行ったのではないか。もしかしたらミャオ族の一部が、東に逃げていって日本の来たのがこの人達だろうか。


4.百済系


 百済と近いと思われる扶余系の一派が6世紀後半頃に日本に進出して蘇我氏になった。
 蘇我氏が扶余系の根拠として、わかりやすいのは、蘇我馬子の墓(石舞台古墳)で、典型的な横穴墓だ。百済王の武寧王の墓も高句麗の墓も扶余系の墓はみな横穴墓だ。高松塚古墳も横穴墓だが、高句麗の風俗の壁画がでた。江田船山古墳(横穴墓)からも、渡来系の遺物がでている。

 

○ 渡来人 VS 縄文・弥生系

 

 物部氏は、古代を通じて大和朝廷の主要な軍事力であり続けた。 ヒボコ系は、崇神朝では、体制派だったが、応神朝では反体制派に転落する。逆にクマソ¥は、崇神朝では、反体制派だったが、応神朝では体制派になった。
 蘇我氏は、蘇我馬子の時代には、天皇や皇子を殺してもお咎めのない実質的な支配者だった。
 しかし、「祇園精舎の鐘の声、盛者必衰の理を表¥す。」(平家物語)

 

1.蘇我氏 VS 物部氏


 言わずと知れた崇仏派と神道派の戦いであるが、ここではエピソ¥ードとして、出雲族の物部氏に対する復讐について述べる。
 すなわち、物部守屋を殺して物部氏を滅ぼしトミノイチイが放った矢であり、トミノイチイこそ神武天皇の大和征服の時に物部氏の始祖に殺されたトミノナガスネヒコの末裔だったのである、第33代後の推古天皇の時代にあだ討ちの本望をとげたとになる。


2.蘇我氏 VS 旧倭国勢力


 天智天皇には、2人の皇子がいた。大友皇子と大海人皇子である。大友皇子は、百済系を70人高級官僚に指名した。こうして、百済系は大友皇子を推して、旧倭国勢力は、大海人皇子を推して、古代最大の戦いが起こった。この戦いで大海人の皇子(旧倭国勢力)が勝ち天武天皇となった。 大海人の皇子は、豪族に挙兵をつのる際に、アマテラス(邪馬台国の卑弥呼と考えられる)を祭る神事を行った。これにより、旧倭国勢力が結集したものである。主体となったのは、魏から金印をもらった「倭奴国」の末裔で、吉野から名古屋にかけてが拠点である。大天海皇子には、「ウミ」(Sea)の字がある。これは、大陸系ではなく海洋民族であることをあらわしている.

○ その後


 天武天皇は、どちらが勝ったか判らないくらい敗者の百済系を取り立てたが、百済系は、だんだん勢力を失っていった。
  やがて、渡来人も純粋な日本人になっていって、「メデタシ、メデタシ」ではないのである。それは、大和(中央)の話だけで地方は、あいかわらず、部族意識の強い勢力があった。源平合戦や、戦国時代、江戸時代の参勤交代による地方の疲弊などにより、明治時代始めに日本は、全体として皇国としてまとまるのである。


고대의 일본

도래인과 야요이인에 대하고 권태를 씁니다.

 

○죠몽·3월계


1.죠몽인


 죠몽인에 대해서는, 북방계설과 남방계설이 있지만, Gm유전자에 의하면 북방계로 Baical 호반에 사는 방어 아트족에 가깝다고 한다.방어 아트족은, 몽고족과 달라 따뜻한 집에 살고 있기 위해서 눈이 큰 등 남방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2.이즈모족(야요이인)


 야요이인으로서 중국 강남 지방으로부터 온 월족이다.그것은, 베트남과 같은 배를 사용한 전통의 경기가, 이즈모에도 있는 것으로부터도 안다.이즈모족은, 이즈모 지방 만이 아니게 다이와를 포함한 넓은 지역에 살고 있었다.일본에서는, 10월의 일을 10월이라고 말한다.단지, 이즈모만이 카미아리월이라고 말한다.이 경우의 신과는, 부족장의 것이다.즉 10월에 일본안의 부족장이 이즈모에 모인 것을 의미한다.


3.야마토 나노쿠니


 야마토 나노쿠니도 해양 민족이며, 이즈모족과 동계통이라고 생각되지만, 큐슈 북부에 있어 대륙과 가깝기 때문에, 국제 외교나 최신의 문화를 받아 들인 선진국이었다.


○ 도래인


 여기에서는, 천손족을 모두 도래인으로 한다.(니기하야히의 모노노베씨도 도래인으로 한다)

 

1.이즈모노쿠니 양도


 이즈모는, 천손족에 나라 양보했지만 , 본격적으로 압력이 가해지는 것은, 스진 덴노 60년의 모노노베씨에 의해서, 이즈모 신사 제신보물이 빼앗기는 사건의 뒤다.한편, 나라 양도 때에 싸운 타케미나카타신은, 나가노의 스와까지 무사히 달아나 한층 더 타케미나카타신을 모시는 스와 신사는, 관동을 중심으로 4500개소 있어, 오히려 자손은 번영했다고 말할 수 있다.


2.진무 덴노, 모노노베씨


 최초로 모노노베씨가 큐슈로부터 다이와로 옮겨, 종모양의 청동기 문화권을 형성했다.이즈모족과는 공존했다.다음에 진무 덴노가 큐슈로부터 다이와로 옮겨, 모노노베씨와는 공존하지만, 반대한 이즈모족의 트미노나가스네히코를 죽여 버린다.


3.스사노오노미코트 =트누가아라히트 = (아메노히보코?)


 스사노오노미코트와 트누가아라히트는 ,함께 소의 머리를 한 우족이다.트누가아라히트는, 별로 알려지지 않지만, 지명의 츠루가의 어원이다.이것들, 우족은, 중국에서 유사한 것을 찾으면 먀오족의 조상으로 중국의 옛 중국의 전설상의 세 천자의 황제와 싸운 시유우가 있다.먀오족이라고 하면 장강 문명의 담당자라고 생각되고 있지만, 다른 것은 아닐것인가 라고 하는 설이 있다.그것은, 시유우가 북경시에서(보다) 해측의 곳에서 황제와 결전을 했기 때문에이다.먀오족은 원래 황하 하류에서 밭농사를 하고 있고, 황제에 깨지고, 장강 중류역에 가, 한층 더 압박받고 윈난성에 간 것은 아니겠는가.혹시 먀오족의 일부가, 동쪽으로 도망치고 가고 일본이 왔던 것이 이 사람들일까.


4.(쿠다라)백제계


 (쿠다라)백제와 가깝다고 생각되는 부여계의 일파가 6 세기 후반무렵에 일본에 진출해 소가씨가 되었다.
 소가씨가 부여계의 근거로서 알기 쉬운 것은, 소가노 우마코의 무덤(석무대 고분)에서, 전형적인 횡혈무덤이다.(쿠다라)백제왕 무령왕의 무덤도 고구려의 무덤도 부여계의 무덤은 모두 횡혈무덤이다.다카마츠즈카 고분도 횡혈무덤이지만, 고구려의 풍속의 벽화가 나왔다.에타 후나야마 고분(횡혈무덤)으로부터도, 도래계의 유물이 나오고 있다.

 

○ 도래인 VS 죠몽·3월계

 

 모노노베씨는, 고대를 통해서 야마토 조정의 주요한 군사력으로 계속 되었다. 히보코계는, 숭신조에서는, 체제파였지만, 응신조에서는 반체제파에 전락한다.반대로 쿠마소는, 숭신조에서는, 반체제파였지만, 응신조에서는 체제파가 되었다.
 소가씨는, 소가노 우마코의 시대에는, 천황이나 황태자를 죽여도 비난해가 없는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그러나, 「기원 정사의 종의 소리, 성자 필쇠의 리를 겉(표).」(헤이케 이야기)

 

1.소가씨 VS 모노노베씨


 말하지 않고와 알려진 숭불파와 신도파의 싸움이지만, 여기에서는 에피소드로서 이즈모족의 모노노베씨에 대한 복수에 대해 말한다.
 즉, 모노노베노 모리야를 죽이고 모노노베씨를 멸해 트미노이치이가 발한 화살이며, 트미노이치이야말로 진무 덴노 다이와 정복때에 모노노베씨의 시조에게 살해당한 트미노나가스네히코의 후예였던 것인, 제33대 후의 스이코천황의 시대에 복수의 숙원을 이라고 나막신과가 된다.


2.소가씨 VS 구야마토 국세력


 텐지천황에게는, 2명의 황태자가 있었다.오오토모노 미코와오오마마노 미코이다.오오토모노 미코는, (쿠다라)백제계를 70명 고급관료로 지명했다.이렇게 하고, (쿠다라)백제계는 오오토모노 미코를 추천하고, 구야마토 국세력은,대해인황태자를 헤아리고, 고대 최대의 싸움이 일어났다.이 싸움으로 대해인의 황태자( 구야마토 국세력)가 승리 텐무천황이 되었다. 대해인의 황태자는, 호족에게 군사를 일으킴을 더 심해갈 때에, 아마 테라스(사마일국의 히미코라고 생각된다)를 제사 지내는 제사를 실시했다.이것에 의해, 구야마토 국세력이 결집한 것이다.주체가 된 것은, 위로부터 금표를 받은 「야마토 나노쿠니」의 후예로, 요시노로부터 나고야로 걸쳐가 거점이다.대텐카이 황태자에게는, 「우미」(Sea)의 글자가 있다.이것은, 대륙계는 아니고 해양 민족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 후


 텐무천황은, 어느 쪽이 이겼는지 모를 정도 패자의 (쿠다라)백제계를 내세웠지만, (쿠다라)백제계는, 점점 세력을 잃어 갔다.
  이윽고, 도래인도 순수한 일본인이 되어 가고, 「메데타시, 메데타시」는 아닌 것이다.그것은, 다이와(츄우오)의 이야기만으로 지방은, 변함 없이, 부족 의식의 강한 세력이 있었다.백과 홍 전투나, 전국시대, 에도시대의 다이묘를 일정기간 교대로 머무맙 의한 지방의 피폐등에 의해, 메이지 시대 시작해에 일본은, 전체적으로 황국으로 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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