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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맹묘를 어루만지는 2 전염병의 이야기 9 결론

조선의 전염병과 위생 결론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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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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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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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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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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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비판이라든지 전염병의 외측이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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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0이 3월 6일.무려 4개월에 걸치는 줄줄 한 시리즈가 되어 버렸습니다.당초 3회 정도로 끝나려고 생각했습니다만, 몹시 미안하고.

사실은 몇개인가 속박을 걸치고 스렛드로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하나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당초 있던 속박은
1 넷상에서 검색할 수 있는 정보로 구축
2 선행 논문이라든지 어려운 것은 읽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3누구라도 아는 레벨의 그래프 이외 사용하지 않는다(고도의 그래프는 사용하지 않는다)
4 법정 전염병으로부터 축을 늦추지 않는다

(이었)였습니다만, 이제(벌써) 최초부터 안되었지요.역시 총독부 전체를 생각하려고 하면 넷상의 정보만으로는 전혀 이빨이 서지 않고, 결국 국회 도서관에 의지하게 되어 버렸습니다.가능한 한 평이한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만 어떻게도 알기 쉬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조사하고 있는 일도 포함해 매우 공부가 되었습니다.HTML에 손을 대어, Gif의 제작까지 손을 대려고는 당초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런데, 최후이므로 종합적인 결론.


한반도에 있어서의 법정 전염병 각각의, 그 해의 인구에 대한발생율(‰)


전술 사망률(‰)




결론

법정 전염병에 대한 코유이론
1 천연두・콜레라에 대해서는 주기적인 유행 경향을 볼 수 있어 특히1919-24에 걸친 천연두,1919-20에 걸친 콜레라의 유행은1918-19의 스페인 감기의 판데믹크과 겹쳐지고 있다.특히 콜레라는 교통기관이 발달해 종래부터 급속히 전염병 피해가 확대하는 경향을 나타내,한반도도 그 점에 있고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던 것을 나타내는 사실로서 봐도 좋다.

2 천연두는 이씨 조선 시대에 종두법(인 두법)이 들어가 있어 그 시기는 일본에서의 도입 시기와 별로 차이가 없다.도입시의 의료의 발달 단계, 그 후이기 때문에 정자나 의사의 대응, 서양에의 개국 개항 이후의 동향 등, 제반의 사정에 의해 1870년대에는 압도적인 차이가 생기고 있어조선은 종두법을 일본에서 배워 도입하게 된다.그러나 도입자 연못의 노력도 허무하고, 그 성과는 지극히 한정적인 물건이며, 총독부 통치 직후 천연두는 상당한 사망자를 내고 있다.이것이 감소해 나가는 것은 수년후이며, 강제적이지만 종두를 전개하는 것으로써 환자, 사망자는 격감한다.그 후의 주기적 환자 발생은 외부로부터의 한정적 침입이며, 반도 전체의 업병으로서의 천연두는 박멸에 성공했다고 봐도 좋다.다만, 쇼와기가 되어도 한국인에게는 큰 피해가 나오는 해가 있어, 종두를 제대로 받지 않은 집단이 있었던 것이 지적할 수 있다.
 덧붙여 종두에 관해서는 조선족의 관습(유교적 풍습)에 재빨리 대응해,여성 종두 기술자를 양성하고 있던(일)것은 총독부의 시정 중(안)에서도 주목해야 할 사항이다.

3 콜레라는 순선조 21(1821)・철종 13(1862)・이태왕 16(M12:1879)과 이씨 조선 말기에 몇회인가 큰 유행을 반복하고 있던 것은 뚜렷하다.특히 1821에는 10 일만여의 사망자,1879에는 부산에서 일본인의 손을 빌리고 대책을 하고 있는데도 관계없이 중앙에서는 주술을 한다고 하는 이조 말기의 한심한 상황을 지적할 수 있다.총독부 시대는1919-20에 폭발적인 유행을 일으킨다.이것은 지극히 충격적인 물건이며, 2년에 걸쳐 콜레라 방역뜻이 출판 되는 만큼에서 만났다.그렇지만, 이 경험으로부터 철저한 검역 체제나 불필요한 전염 확대의 저지・한반도 특유의 문제등의 방법이 축적되었다고 생각된다.결과, 이 이후 거의 방역에 성공하고 있다.

4 장티푸스・패러티퍼스・발진티푸스・이질은, 박멸하기는 커녕 오히려 대인구비로 봐도 환자는 증가 경향을 나타낸다.대해 사망자는 환자 증가에 비해 꽤 평탄하고, 치료 효과가 확실히 나와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이것은 위생 사상의 향상(환자수전체의 감소)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시료(무료 진료)나 강제적인 치료( 보고 의무가 있는 전염병 때문에)에 의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5 장티푸스(와 패러티퍼스)는 유행년과 비유행년을 교대로 반복하면서 일관해서 환자 증가 경향을 나타냈다.특히 타이쇼 시대(1912-1926)의 증가는 현저하다.이 경향은 한반도에 특이한 것이 아니고, 내지・대만에서도 같이여, 인구의 증가에 위생시설(특히 수도라고 생각된다)이 대응 다할 수 있지 않았던 것을 나타내고 있다.

6 발진티푸스는 한반도에서는 1920년대까지 보고가 거의 없다.이것은 당시의 의료가 내지도 포함 미발들이며 티푸스를 같은 병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어 장티푸스라고 진단되고 있던 가능성과 풍습(자비 세탁・이불의 미사용)에 의할 가능성의 두 개가 생각된다.특히쇼와기가 되면 발진티푸스는 증가 경향을 보이지만, 이것은 빈민층에도 침구나 면입동복이 보급되어 있어 접을 수 있는 일어난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7 이질은 내지・대만・반도에서는 완전히 다른 경향을 나타냈다.내지・반도에서는1919-20에서는 발생이 적게 되고 있었지만, 이유는 불명하다.쇼와에 들어가는 곳의 두 지방역은 발생율 그 자체가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내지만, 내지가 비싸게 머문 채로인데 대해, 반도에서는 전시중에 감소한다, 라고 말하는 이상한 경향을 나타냈다.외지(반도・대만)의 내지인(일본인)은, 현지인의 발생율과 닮은 것 같은 경향을 나타내면서도 점차 감소 경향을 나타냈다.

총독부의 동향의 코유이론
A 총독부는 당초, 경찰의에 의한 진료・방역 활동을 주축에, 외부로부터의 전염병 유입에 대해서는 헌병・군까지 총동원하면서, 위생 환경의 향상에 임하고 있었다.또, 의사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서 1914에 종래의 한방의를 의생으로서 인정 한정적인 의료에 참가시키고 있다.또 1913이후 종전까지 순회 치료를 실시해 무의촌등에서의 치료에 임하고 있었다.특히 1919까지는 이 체제로 순회 치료도800-2500회라든지 되어 정력적으로 해내고 있다.
 
B 그러나 1920에 큰 체제 재검토를 해 병원수는 1919의 395에서 139까지 삭감, 순회 치료도 837에서 265회까지 줄이고 있다.순회 치료 그 자체는 1918으로부터 감소 경향에 있어, 가장 적은 해(1937)로는 22회에까지 감소한다(다만 1923에 1200회 순회하고 있어 필요하게 응해 증감시켜 있던 것 듯한다).의생에 대해서는 자연감에 맡기고 있던 것 같고 급격한 감소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 서양의는 1920이후나 급격하게 증가할 것은 없었다.1919에 1038명인 의사수는, 1940으로 겨우 3187명이며, 인구 1만에 대해 1.34.지극히 위기적수였다.

C 이 문제에 대해 반일적 논문에서는 내지에 비해 지극히 빈약하다, 대만과 비교해도 한국인 경시이라고 반드시 쓰여지지만, 내막은
1) 1920의 병원 삭감은 법규에 준거해 명확하게 병원을 정의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2) 순회 치료에 대해서는 콜레라 대유행 이후 일단 시료자가 감소하지만 1회당의 진료자수는 별로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쇼와가 되면 이전보다 많은 인원수를 진료하고 있다
3) 1925(T15)에서는 8도 중 황해・평안・함경・강원에서는 이미 한국인 의사가 전체의 반수를 넘어 1940(S15)에서는 경상남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한국인 의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반도의 의료를 한국인에 맡기려 하고 있던 것을 안다.인재육성이 따라잡지 않았던 것 뿐이라고 생각된다.

라고 실은 가능한 한 반도는 한국인에 시켜 간다고 하는 자세가 총독부에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경향이 숫자에 나타났다고 생각된다.인재육성의 미스에 대해서는 여기에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D 총독부에 있어서1918-20에 걸친 전염병 만연은 위생 행정을 크게 바꾸었는지라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은 있지만 영향이 없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싶다.특히 콜레라 방역뜻으로의 검역이나 환자의 추적등을 보면, 요즘이 되어도 한국인의 위생 개념은 미발들이며, 게다가 관경의 지도에 따르지 않는 경향이 인정된다.특히 전염병을「병마」로서 생각해서 금지되고 있는 것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하게 이동을 실시하는, 유교 사상에 묶여 사체 처리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등, 총독부의 고뇌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E 사회적인 문제, 라고 하는 단면에서는 정확히 이 직전 3.1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 콜레라 유행(8월) 개시시에는 일단 의 결말이 나고 있지만, 방역 체제에는 상당한 강권이 필요했기 때문에는 없을까 생각된다.본건에 대해서는, 당시의 정치 상황이나 사회 정세에 대해 자세하게 검토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상상의 범위를 나오지 않지만.

F 분뇨 처리・오물처리에 대해서는 경성을 시작으로 내지와 같은 조직(위생회・위생 조합)으로 대응해, 차례차례 부청등에 이행 하고 있다.수도에 관해서는 당초 미국인등도 부설을 실시하고 있지만, 총독부는 그것들을 모두 구입하고 있다.단지, 이러한 업무를 따라잡지 못할 기세로 도시에의 인구 집중・인구증가가 일어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G 위생 사상이라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1918이후의 전염병 대유행 이전부터 계몽 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이 시기를 경계로 계몽 활동에 주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그런데도1940(S15)이 되어도 채혈(주사기)에 대한 단순한 공포가 남아 있는등, 효과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 남는다.그런데도 요즘이 되면 농촌부에서도 집의 구석에 구획된 변소를 마련하게 되어, 공동 우물의 관리 체제도 향상하고 있는 것 같다.

위생과 인구에 관한 결론
α 위생 관리의 효과는 1913까지는 분명히 간파할 수 없다.이것은 전염병에 한정하지 않고, 인구의 변화로부터도 지적할 수 있다.

β 계절적 사망 캘린더나 유아의 사망률 변화로부터 상상되는 것은
1) 이씨 조선 시대는 종말기까지 일본의 중세에 가까운 상태인 것
2) 타이쇼 시대에 급격하게 근대적 사망 경향에 변화
3) 쇼와에는 내지를 추월하는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봐도 좋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왜 일어났는지를 대해 논의가 있는 곳(중)이지만, 총독부의 위생 관리의 영향은 컸다고 생각된다.

γ 인구 동태에 대해서는 1915 정도까지는 신고가 철저히 하지 않았던 마디를 볼 수 있고 쇼와에 들어가도(1930) 인구조사에 의해서 겨우 출생 등록된다고 하는 부분이 있어, 기초 정보인 것에도 불구하고 그 자료적 가치에는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다.또, 총독부 통계연감의 숫자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종횡의 숫자가 이상한, 연도가 다르면 숫자가 다른 등, 수치 그 자체의 신뢰성에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δ 국민건강보험이나 보건소라고 한 것은 찾아낼 수 없었다.적어도 의료보험에 대해서는 공장・선박등에는 있었다고 생각되어 보건소도 도시지역에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종합적인 결론

총독부의 위생 행정은 일선의 차별은 없었다.오히려 뿌리 깊게 남아 있던 유교적 습관이나 적극적인 생활상태의 개선의 부정 등, 한반도에 기인하는 문제가 의료 격차의 장벽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의사 부족에 대해서는 총독부측의 미스(의사 양성 기관의 증강을 게을리하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지만, 조선는 한국인에 맡기자, 라고 할 생각이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진료에 대한 격차(조선 거주 내지인과 한국인과의 의사에게 걸리는 비율의 차이)는 경제적 문제와 역시 관습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천연두와 콜레라에 대해 박멸에 거의 성공했다.또 페스트에 대해서는 내지와 같이 유입 저지에 성공하고 있다.이것은 총독부가 강제적으로 종두를 추진한 것, 검역 체제를 강화 사제연과에 의한다.물론 내지나 대만에서도 같은 정책이 취해지고 있었지만, 이 강제성을 제국의 압정이라고 보는 것은 곡해이다.
외래성의 높은 전염병에 대해서 티푸스나 이질이라고 하는 상주적인 전염병은 오히려 증가하며 갔다.이것은 총독부의 인구정책에 대해, 위생 업무가 따라잡지 않았던 것, 예상 이상으로 도시지역에의 인구 유입이 격렬했던 일등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또 법정 전염병은 아니지만 말라리아의 감소 등, 총독부가 준 성과는 적지 않다.

남은 의문
1몰랐던 말
「소의 물나무 」
2 전후의 위생
GHQ는 총독부의 시정을 접수보다 강권을 가진 위생 관리를 실시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한국 전쟁으로 반도 남부의 인프라는 꽤 파괴되었다고 생각되어 동시에 위생 사상도 꽤 저하해 버린 것은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그 결과, 현대의 한국에 있어서의 위생 사상과 일본에 있어서의 위생 사상의 차이가 완성된 것은 아닐까.다만, 현대 대만도 위생 사상에 대해서는 부분적이든 후퇴하고 있다고 느끼는 면이 있어, 전쟁 전의 위생 사상 그 자체가 현지인은 어느쪽이나 미발들인 채 종전을 맞이한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여기는 향후의 과제이다.GHQ의 시정과 그 후의 대한민국의 시정을 연결해 가면, 아마 현대 한국의 위생 사상의 빈약함의 이유가 떠올라 온다고 생각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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