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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人も分からない ‘本当’ 日本古代史

369年付与族が倭(倭) 征伐, 信徒(神道)は韓国巫俗信仰で来由

 

なぜが 4世紀伽揶を征伐した? 日本の支配者血統は ‘立つ前 660年から一度も断絶された事がなく続いて来た万歳日計の王家’だ?
現在日本若者達が俳優は, あっけない位に歪曲された古代史だ.
4‾7世紀古代日本を掌握したのが韓国係血統だったという事実が分かれば彼らはいくらがっかりしようか. 1982年日本教科書歪曲波動直後, ゾーンカーターコベルが韓・中・日古代歴史書研究を通じて日本の歴史歪曲を一つ一つ暴いた未公開論文を最初に紹介する.

 

高句麗壁画に出る, よろいで武装した高句麗無事. 言葉にもよろいを着せた.

 

日本人たちの 9割は私の国の本当の歴史が分からない. 真実が分かるようになったら心が混乱するでしょう. 日本教育省は国家的自信感を得るために古代であると言う現代まで歴史的事実を偽造して, がミカゼシックの盲目的忠誠を要求した. これは歴史を捜して見れば皆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 日本の歴史歪曲は外国史家たちにはよく知られた一方日本人には大部分隠蔽されて来た. この文は歪曲された日本史の中でも一番明らかでオイオブギまで一古代史に関することでその間研究して来たことが土台になった.

近代日本の若者達は日本の支配者血統が ‘立つ前 660年から一度も断絶された事なしに白寿十代を続いて来た万歳日計の王家’と学んだ. 日帝強点期に日本教師は韓国学生たちにもこんな内容を入れ込んだ.

‘神武王は立つ前 660年信義系譜から出た 1対照で日本列島全体を統一した開国者’と理想的に描かれている. このような神話は普遍的なことになって, 1930年代軍部はこれをもっと強調しながらこれを信じなければ監獄に閉じこめるまでした.

 

‘他のどんな私でも持つことができなかった’ 建国 2600周年を記念する行事の一環で全世界 37ヶ国で日本文化を主題にしたエッセイ公募があった. 筆者も若い時代これに応募して ‘日本の米(美), シブミ’という文で賞を受けた. 以後内が日本の美学が事実は韓国の影響をいくらたくさん受けたのかを分かることに 40年がかかった.

日本が立つ前 660年に国を建てて天皇血統が1行につながって来たという記録が 712年と 720年にそれぞれ編纂された ‘古事記(古事記)’と ‘日本書紀(日本書紀)’ 二つの歴史書に出ている. 二つの本には ‘天皇家門は立つ前 660年建国した 1台先祖からつながって来た血統’と被せている. これは 8世紀当代の天皇を合法化するために被せられたのだ. 歴史編纂当時の日本王家は王位に上がってからやっと 100年位になった家だっただけで, あの時も日本には文を知り合いがほとんどいなくて文字に記録された歴史書がなかった. 先立って 7世紀に歴史書が編纂されたが王権争うことの戦乱の中に燃えてしまった.

亡命士官たちが捏造した ‘日本書紀’

日本天皇は百済で亡命した学者たちに ‘日本書紀’ 編纂を任せた. 祖国百済を滅亡させた新羅に恨みを晴らすことはこれらは新たに仕える日本賃金に忠誠を誓約しなければ生き残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そしてこれら手で作られた日本歴史ではおびただしい矛盾と捏造でいっぱいになるようになった. 彼らが分かっている実際歴史はただ 300年前からだったが, 1000余年も長く歴史をふやすためにどんな天皇は 100年度以上統治したと書いた.

その前には長年の家計を歌のように覚えたがダリベ(語部)らが歴史書役目をした. がダリベは日本語で家計を覚えて呼んだ. それに比べて ‘古事記’と ‘日本書紀’は漢文で被せているのにどんな場合はうーんを取って使ってどれは意味を借用して書いたから理解夏期がとても難しい.

新生王家の歴史を古いことで様変りさせ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し, 新羅に対する憎悪に燃えながら日本語で聞いたことを漢字で訳さ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歴史学者たちの難しさを推し量ったら, ‘日本書紀’に数えきれなく現われる矛盾や間違いはあまり変なこともない.

なかでも代表的な間違いは無くさなければならない実は一つを完全に消すことができずにそのまま置いたというのだ. すなわち日本最初の王朝は 4世紀頃日本へ来た一部学者たちが ‘騎馬族’と称える不足で, 海向こう北から来たという事実だ. 彼らは無視してしまっても良いいち遊牧民集団ではなく一世紀にわたって韓国の北末から南側まで荒した付与族で 3世紀に北で韓半島南に下った. 先進技術を持った付与族が伽揶と百済にドルロマックヒン地域を捨てて釜山で海向こう新しい地倭(倭)を占領しに来たことが 369年頃. これらは伽揶と百済に多い ‘いとこ’を残しておいて去った. 彼らは海向こう日本の領土南西部に多い韓国人が数百年の間定着して暮していることを分かっていた.

付与族は野心満満した不足だった. 彼らは日本に最初の実際王朝を建国して不毛で油気がないその所に中央集権化された政府体制と騎馬兵術を伝授した. 8世紀歴史学者たちの初任務はこんな付与族の日本征服を隠蔽して付与族が成した中央集権国家を当代チォンファングネご先祖が作ったことにすり替えするのだった. 文を知り合いがほとんどいない時代だったからこんな作業があまり難しいことではなかった.

立つ前 660年の日本は旧石器あるいは新石器時代だったし金属文明はあの時まで渡来しなかった. また当時人々が最初の居住民ではない. 10万年の前日本の領土にも人間が居住して石斧, ドルカルみたいな品物を残したと言う.


No 1. 일본인도 모르는 ‘진짜’ 일본 고대사

일본인도 모르는 ‘진짜’ 일본 고대사

369년 부여족이 왜(倭) 정벌, 신도(神道)는 한국 무속신앙에서 유래

 

왜가 4세기 가야를 정벌했다? 일본의 지배자 혈통은 ‘서기전 660년부터 한번도 단절된 적 없이 이어온 만세일계의 왕가’다?
현재 일본 젊은이들이 배우는, 어이없을 정도로 왜곡된 고대사다.
4~7세기 고대 일본을 장악한 것이 한국계 혈통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은 얼마나 실망할까. 1982년 일본 교과서 왜곡 파동 직후, 존 카터 코벨이 한·중·일 고대 역사서 연구를 통해 일본의 역사왜곡을 낱낱이 파헤친 미공개 논문을 최초로 소개한다.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갑옷으로 무장한 고구려 무사. 말에도 갑옷을 입혔다.

 

일본인들의 9할은 제 나라의 진짜 역사를 모른다. 진실을 알게 된다면 마음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일본 교육부는 국가적 자신감을 얻기 위해 고대 이래 현대까지 역사적 사실을 위조하고, 가미카제식의 맹목적 충성을 요구했다. 이는 역사를 들춰보면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외국 역사가들에겐 잘 알려진 반면 일본인에게는 대부분 은폐되어왔다. 이 글은 왜곡된 일본역사 중에서도 가장 분명하고 어이없기까지 한 고대사에 관한 것으로 그간 연구해온 것이 바탕이 되었다.

근대 일본의 젊은이들은 일본의 지배자 혈통이 ‘서기전 660년부터 한번도 단절된 일 없이 백수십대를 이어온 만세일계의 왕가’라고 배웠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교사는 한국 학생들에게도 이런 내용을 주입했다.

‘진무왕은 서기전 660년 신의 계보에서 나온 1대조이고 일본 열도 전체를 통일한 개국자’라고 이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신화는 보편적인 것이 되고, 1930년대 군부는 이를 더욱 강조하면서 이를 믿지 않으면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다.

‘다른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건국 26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전세계 37개국에서 일본문화를 주제로 한 에세이 공모가 있었다. 필자도 젊은 시절 이에 응모해 ‘일본의 미(美), 시부미’라는 글로 상을 받았다. 이후 내가 일본의 미학이 사실은 한국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를 아는 데 40년이 걸렸다.

일본이 서기전 660년에 나라를 세우고 천황혈통이 한 줄로 이어져 왔다는 기록이 712년과 720년에 각각 편찬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두 역사서에 나와 있다. 두 책에는 ‘천황가문은 서기전 660년 건국한 1대 조상으로부터 이어져온 혈통’이라고 씌어 있다. 이는 8세기 당대의 일왕을 합법화하기 위해 씌어진 것이다. 역사 편찬 당시의 일본 왕가는 왕위에 오른 지 겨우 100년 정도 된 집안이었을 뿐이고, 그때도 일본에는 글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문자로 기록된 역사서가 없었다. 앞서 7세기에 역사서가 편찬됐으나 왕권 다툼의 전란 속에 불타버렸다.

망명 사관들이 날조한 ‘일본서기’

일본 천황은 백제에서 망명한 학자들에게 ‘일본서기’ 편찬을 맡겼다. 조국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에 원한을 품은 이들은 새로 섬기는 일본 임금에게 충성을 서약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들 손에서 만들어진 일본 역사서는 엄청난 모순과 날조로 가득 차게 됐다. 그들이 알고 있는 실제 역사는 오직 300년 전부터였지만, 1000여 년이나 길게 역사를 늘리기 위해 어떤 일왕은 100년도 넘게 통치했다고 썼다.

그 전에는 오랜 가계를 노래처럼 외우던 가다리베(語部)들이 역사서 구실을 했다. 가다리베는 일본말로 가계를 외워 불렀다. 그에 비해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한문으로 씌어 있는데 어떤 경우는 음을 따서 쓰고 어떤 것은 뜻을 차용해 썼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다.

신생 왕가의 역사를 오래된 것으로 탈바꿈시켜야 했고, 신라에 대한 증오에 불타면서 일본어로 들은 것을 한자로 옮겨야 했던 역사학자들의 어려움을 헤아린다면, ‘일본서기’에 수없이 나타나는 모순이나 오류는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다.

그중 대표적인 실수는 없애야 할 사실 하나를 완전히 지우지 못하고 그대로 뒀다는 것이다. 즉 일본 최초의 왕조는 4세기경 일본에 온 일부 학자들이 ‘기마족’이라고 일컫는 부족으로, 바다 건너 북쪽에서 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무시해버려도 좋을 일개 유목민집단이 아니라 한 세기에 걸쳐 한국의 북쪽 끝에서 남쪽까지 휩쓴 부여족으로 3세기에 북쪽에서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왔다. 선진기술을 지닌 부여족이 가야와 백제에 둘러막힌 지역을 버리고 부산에서 바다 건너 새로운 땅 왜(倭)를 점령하러 온 것이 369년 무렵. 이들은 가야와 백제에 많은 ‘사촌’을 남겨두고 떠났다. 그들은 바다 건너 일본땅 남서부에 많은 한국인이 수백년 동안 정착해 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부여족은 야심만만한 부족이었다. 그들은 일본에 최초의 실제 왕조를 건국하고 척박한 그곳에 중앙집권화된 정부체제와 기마병술을 전수했다. 8세기 역사학자들의 첫 임무는 이런 부여족의 일본 정복을 은폐하고 부여족이 이룩한 중앙집권 국가를 당대 천황네 조상들이 만든 것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이었다. 글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시대였으므로 이런 작업이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서기전 660년의 일본은 구석기 혹은 신석기시대였으며 금속문명은 그때까지 도래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 사람들이 최초의 거주민은 아니다. 10만년 전 일본땅에도 인간이 거주해 돌도끼, 돌칼 같은 물건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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