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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光州に北朝鮮軍特殊部隊投入された zkzk 2009/09/25 63 0

光州に北朝鮮軍特殊部隊投入された¥”

北特殊部隊出身北脱出者 ¥”自由北朝鮮軍人連合¥” 記者会見
¥“5.18 光州事態は金正日政権の対南戦略ズングミョングシキズは現場¥”


[デイリーの中ユンギョングワン記者]

 

◇ 北朝鮮軍特殊部隊出身北脱出者たちが 20日光州民主化抗争に北朝鮮軍が介入したという記者会見をしている. c。デイリーの中ユンギョングワン記者

光州5.18民主化抗争に北朝鮮軍特殊部隊 1個大隊が投入されたという主張が北朝鮮軍出身北脱出者たちによって申し立てられて衝撃が予想される.

北朝鮮軍特殊部隊出身者たちで構成された自由北朝鮮軍人連合は 20日午前ソウル正東セシルセストラングで記者会見を開いて “5.18光州事態は (北朝鮮の)自由デモクラシー体制に対する白色テロと同時に金正日政権の対南戦略を証明させてくれる現場”と言った.

自由北朝鮮軍人連合林泉用代表は “光州事態の発端と始発点は民主化一揆だったと認めるが幾多の人名が無惨に殺傷されて無惨に屠戮された流血的な事件は金正日政権によって計画的に作られたテロ行為”と明らかにした.

彼はその証拠で ▲当時一揆状況が北朝鮮でリアルタイム生中継されたこと ▲一揆者たちが後から鉄砲に叩かれて死んだこと ▲現在まで未解明で残っている身元未詳者 ▲電気鋸によって頭蓋骨が破壊された死骸 ▲一揆君が一揆君を射殺したこと ▲一揆君のアジトと一揆君が奪取したタンク・装甲車・輪転記載の中で大量発見された酒ビンの真義 ▲防衛産業体・監獄・放送局など国家機関占拠と余分の能力を超越して全面戦争を不死したことなどを言及した.

彼はまた金日成・金正日父子が光州事件と係わった発言をしたと入手内容を明らかにしたりした.

である代表によれば金日成主席は “今まで南朝鮮を解放させることができる絶好の機会を三度逃したがその中で光州が一番惜しい. 私たち準備がとても不足だったし怠慢だったの”と言ったと言う. これは金主席が 1986年 1月 6日平南道ドックチォン教徒指導国本部で開かれた指導局傘下旅団長政治委員のための軍事政治のことだね商学(授業)で発言した内容で私は人民軍に配布された政治商学資料で出処を得たと林代表は明らかにした.

また金正日総書記は “光州で私たちは教訓を捜さなければならない. 勝つことができたが結果は押えられた. 取ることが少なかったし訓練不足だ. 教徒指導局は南朝鮮解放の前哨病だ. いつでも出なさいといえば今すぐ出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万端の動員準備を取り揃え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と発言したと言う. これは金委員長が 1982年 3月北朝鮮特電旅団たちが北部地区で開けた双方ゲリラ訓練場で発言したことで出処は教徒指導局各旅団参謀部及び代代参謀部と明らかにした.

である代表は当時現場に投入された北朝鮮に帰隊した参加者達の証言を確保したと彼らの発言を次のように公開した.

Aさん:<私が参加したまどろむデモ隊の方に編入されて行動した. 半々ずつ分けられて半分はデモ隊の方で動いたし半分は戒厳君の方で活動した…私たち代代から出た人々の中にチァングソックが(当時中隊長), 光だけが(政治指導員)を含んで三つの人だけ帰って来た…何の罪もない人殺す事を初めてやって見た. 血をこぼしながら死んで行く人々を自分の手で殺したと思ったら無惨な位だった…逃げだす女達背中に当てて引き金を引くのが本当に震える事だった…私たちは公開的に出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命令に従わ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南朝鮮四方で立ち上がって支援勢力が群がって来れば良い数度あったがその人々自体は組織的な団合がなくて洞内連中けんか式だった. 私たちが現われるようになれば事が大きくなるようになっていて一揆の性格が変わったはずだ.>

Bさん: <私たちも死んだが南朝鮮人々が本当にたくさん死んだ. その人々は誰弾にどんなに死んだのか分からないだろう. 両方を撹乱してけんかを付けるためには仕方ない事だった…デモ隊たちがあんまりおかゆがなければ仕事がそのようにカージー期も不可能だった. 傀儡軍だかデモ隊でも両方に被害が生じてお互いの摩擦が大きくなると意図どおりできる事だった.>

Cさん: <私たちもわからない別途の特殊組が動いたことで分かっている. 彼らは私たち行動とちょっと違うように現場の雰囲気を作る作業をしたはずだ…私たちの行く時は公海上にそちら子たち二つの尺のトラックソンが出迎え出たが私服を着たし夜だったから顔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である代表は “見かけをかぶった民主化人士が北朝鮮政権と口を合わせて光州の犠牲を子時たちの政治的自分に逆利用して特定集団の象徴的な業報で先導している”と “破壊される国家事態の前でこれ以上口をつぐんではいけないという考えに記者会見を開くようになった”と主旨を説明した.

この日北朝鮮社会安全部大尉出身金縁化さんは “一揆当時に北朝鮮人民軍中尉であったし黄海北道松林に位した社会安全部年俸部隊で自動車を管理して人民軍の輸送を担当した”と “その当時 ‘狸作戦’と言って大同江下流に沿って南韓君の服を着て自動補聡を持って出ることを何回目撃した. 夜 1, 2時になると 10人位を焼いた船が静かに抜けたしあの時は射撃中止命令が下ろされた”とその時抜けた北朝鮮軍たちが光州へ行くためのことだと確信した.

彼は “北朝鮮では光州事件は北朝鮮で計画されたことで分かっていたがここ来てそれを民主化抗争だと言うことを見てびっくりした”と言った.

北朝鮮教徒指導局大尉出身の催俊逸さんは “北朝鮮特殊部隊出身たちは光州事態に北朝鮮軍が介入したということをほとんど分かっている”と “その頃私は完全戦闘態勢で武装したまま光州事件に対する 24時間緊急速報伝えて聞いて 20余日間出場命令待っていた. 後こそ上官たちの対話を通じて特殊部隊 1代代が光州に投入されたし犠牲も多かったし功労もあったと聞いた. 3分の 1が犠牲されて残り 2は帰隊した”と言った

5.18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 투입됐다

5.18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 투입됐다 zkzk 2009/09/25 63 0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 투입됐다"
북 특수부대출신 탈북자 "자유북한군인연합" 기자회견
"5.18 광주사태는 김정일 정권의 대남전략 증명시키주는 현장"


[데일리안 윤경원 기자]
◇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들이 20일 광주민주화항쟁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윤경원 기자

광주5.18민주화항쟁에 북한군 특수부대 1개 대대가 투입됐다는 주장이 북한군 출신 탈북자들에 의해 제기돼 충격이 예상된다.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자들로 구성된 자유북한군인연합은 2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세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광주사태는 (북한의)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한 백색테러이자 김정일 정권의 대남전략을 증명시켜 주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자유북한군인연합 임천용 대표는 “광주사태의 발단과 시발점은 민주화봉기였다고 인정하지만 수많은 인명이 무참히 살상되고 끔찍하게 도륙당한 유혈적인 사건은 김정일 정권에 의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테러행위”라고 밝혔다.

그는 그 증거로 ▲당시 봉기상황이 북한으로 실시간 생중계된 것 ▲봉기자들이 뒤에서 총에 맞아 죽은 것 ▲현재까지 미해명으로 남아있는 신원 미상자 ▲전기톱에 의해 두개골이 파괴된 시체 ▲봉기군이 봉기군을 사살한 것 ▲봉기군의 아지트와 봉기군이 탈취한 탱크·장갑차·윤전기재 안에서 대량 발견된 술병의 진의 ▲방위산업체·감옥·방송국 등 국가기관 점거와 군 능력을 초월해 전면전을 불사한 것 등을 언급했다.

그는 또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광주사건과 관련한 발언을 했다며 입수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임 대표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지금까지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세 번 놓쳤는데 그중에서 광주가 제일 아까워. 우리 준비가 너무 부족했고 태만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김 주석이 1986년 1월 6일 평남도 덕천 교도지도국본부에서 열린 지도국산하 여단장 정치위원을 위한 군사정치일군 상학(수업)에서 발언한 내용이며 전 인민군에 배포된 정치상학 자료에서 출처를 얻었다고 임 대표는 밝혔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광주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이길 수 있었지만 결과는 진압됐다. 땀이 적었고 훈련부족이다. 교도지도국은 남조선해방의 전초병이다. 언제든지 나가라면 당장 나갈 수 있게 만단의 동원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이는 김 위원장이 1982년 3월 북한특전여단들이 북부지구에서 벌린 쌍방 게릴라 훈련장에서 발언한 것이며 출처는 교도지도국 각 여단 참모부 및 대대참모부라고 밝혔다.

임 대표는 당시 현장에 투입됐다 북한으로 귀대한 참가자들의 증언을 확보했다며 그들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공개했다.

A씨:<내가 참가했던 조는 시위대 쪽에 편입되어 행동했다. 반반씩 나뉘어 절반은 시위대 쪽에서 움직였고 절반은 계엄군 쪽에서 활동했다…우리 대대에서 나갔던 사람들 중에 창석이(당시 중대장), 광만이(정치지도원)를 포함해 세 명만 돌아왔다…생사람 죽이는 일을 처음 해봤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내손으로 죽였다고 생각하니 끔찍할 정도였다…도망가는 여자들 등에다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정말 떨리는 일이었다…우리는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는 명령을 따라야 했다. 남조선 사방에서 들고 일어나서 지원세력이 몰려오면 될 수 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 자체는 조직적인 단합이 없고 동내패거리 싸움식이었다. 우리가 드러나게 되면 일이 커지게 돼 있고 봉기의 성격이 바뀌었을 것이다.>

B씨: <우리도 죽었지만 남조선 사람들이 정말 많이 죽었다. 그 사람들은 누구총알에 어떻게 죽었는지 모를 것이다. 양쪽을 교란하고 싸움을 붙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시위대들이 많이 죽이 않으면 일이 그렇게 커지기도 불가능했다. 괴뢰군이건 시위대건 양쪽에 피해가 생겨서 서로의 마찰이 커져야 의도대로 되는 일이었다.>

C씨: <우리도 알 수 없는 별도의 특수조가 움직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우리행동과 좀 다르게 현장의 분위기를 만드는 작업을 했을 것이다…우리가 갈 때는 공해상에 그쪽 애들 두 척의 뜨락선이 마중 나왔는데 사복을 입었고 밤이었기 때문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임 대표는 “허울을 쓴 민주화 인사들이 북한정권과 입을 맞추며 광주의 희생을 자시들의 정치적 자신으로 역이용하고 특정집단의 상징적인 업보로 선동하고 있다”며 “파괴되는 국가사태 앞에서 더 이상 입을 다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북한 사회안전부 대위 출신 김용화 씨는 “봉기 당시에 북한 인민군 중위로 있었고 황해북도 송림에 위치한 사회안전부 연봉부대에서 자동차를 관리하며 인민군의 수송을 담당했었다”며 “그 당시 ‘너구리 작전’이라고 해서 대동강 하류를 따라 남한군의 옷을 입고 자동보총을 들고 나가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다. 밤 1, 2시가 되면 10명 정도를 태운 배가 조용히 빠져나갔고 그때는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졌다”고 그 때 빠져나간 북한군들이 광주에 가기위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광주사건은 북한에서 계획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 와서 그것을 민주화항쟁이라고 하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북한교도지도국 대위출신의 최준일씨는 “북한특수부대출신들은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것을 거의 다 알고 있다”며 “그 당시 나는 완전 전투태세로 무장한 채 광주사건에 대한 24시간 긴급속보 전해 들으며 20여일간 출전명령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야 상관들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대대가 광주에 투입됐고 희생도 많았고 공로도 있었다고 들었다. 3분의 1이 희생되고 나머지 2는 귀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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