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紹介 Relationship

詳しく調査したが日帝の土地収奪は無かった。
慰安婦の強制動員は、いくら調査しても証拠が1個も無い話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77687
オーマイニュース(韓国語) 2006年12月4日


アン・ビョンジク ソウル大学名誉教授


 2日午後に麻浦区のニューライト財団事務室で会った安秉直ニューライト財団理事長(70歳、ソウル大学名誉教授)は、登山服姿だった。先月30日の教科書フォーラム(常任代表:朴孝鍾)による代案教科書シンポジウムで4・19革命同志会員らに胸ぐらをつかまれるという侮辱を受けたが、大きい負傷は無さそうだった。安教授は最初に「物議をかもして国民に申し訳ない」と述べた。


韓国で真実を言って暴行を受けるイ・ヨンフン教授


韓国で真実を言って暴行を受けるアン・ビョンジク教授


 <中略>

 しかし安教授は、日帝植民統治が韓国の近代化に寄与したということと、韓米同盟によって韓国が体制を維持できたということ、朴正煕軍事政権の経済努力に対しては、確固たる信念を表明した。

 まず安教授は、教科書フォーラムの代案教科書が日帝強占を正当化した日本の「新しい歴史教科書をつくる会の主張と似ているとの指摘に対して、「草案を読んでいないから」と一蹴した。また、「日帝時代、土地収奪は無かった」として、「親日派『つくる会』と考えが同じだ、と批判されても、私は(日帝の土地収奪があったという)そんな事実を受け入れることはできない」と述べた。

 従軍慰安婦の記述を落としている、とか、抗日武装独立運動を意図的に縮小している、という非難に対しても、「現在の歴史の中心軸におくべきではないからだ」と述べた。更に、「(日本軍隊慰安婦問題などを)落とすことはできない」として、なんらかの形で代案教科書に載せる予定だと語った。

 ただし安教授は、日本軍慰安婦に関して「みな貧しさから出たことだ」「親が貧しくなければ、どうして自分 の娘を売ったりするものか」と述べており、論難が予想される。教授は、「そんな事実(貧乏)については一言も言わないで、『日本が無条件・強制的に捕えて連れて行ったから慰安婦になった』と言っているが、そんな話はウソだ」と主張した。

 以下は安教授との一問一答だ。

Q.<中略>「朝鮮総督府の土地収奪は事実上なかった」という内容があるようだが。

A.「日本の『つくる会』が(自分たちの教科書で土地収奪を)どう扱っているのかは知らない。私たちは既に 1990年代に、全国の土地調査事業文書をほとんど調査した。土地調査部, 紛争地書類、土地測量関係書類、地籍図を総合検討した結果、『土地掠奪は無かった』というのが私たちの客観的結論だ。それについて 少しも揺らぐことはない。ただ、土地収奪が一件たりとも無かったかということは分からない。」

<中略>

Q.現在の慰安婦と言えば性売買女性のことか。

A.「そうだ。根はどちらも同じだ。どちらも貧しさから出たものだ。親が貧しくなければ、どうして自分の娘を 売ったりするものか。」

<中略>

Q.性売買とは違う問題ではないか?
 慰安婦強制動員があったこと自体は史実と見られるのではないか。

A.「実際、(日帝時代に)強制動員はたくさんあった。男性の場合は徴用や徴兵、女性の場合は挺身隊が強制動員された。しかし慰安婦について、強制をしたかどうかは(まだ客観的には)分からない。強制したという資料を、日本と韓国のどこからも出したことはない。慰安婦経験を持った人々の証言だけだ。史学をやる人間は、証言をもって歴史的な資料とはしない。参照資料に過ぎない。こう言うからといって、私が(慰安婦 強制動員が無かったという)話をしているのではない。ただ資料が無いということだ。」




安秉直教授がテレビ出演 … 「慰安婦業者の半分は朝鮮員」「日本に謝罪ばかり求めて何になるか」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52265(削除済み)
デイリーソープ(韓国語) 2006年12月6日


■教科書フォーラムの安秉直、「慰安婦は自発的」妄言で波紋

 最近「4.19学生運動、5.16革命」波紋を投げかけた教科書フォーラムの余波がいまだ冷めやらぬ中、ニューライト財団理事長を引き受けている安秉直(アン・ビョンジク)ソウル大名誉教授が6日のMBCテレビ「ニュース焦点」に出演して、日帝時代の慰安婦強制動員の証拠はなく土地収奪もなかったと言明し て、再び波紋が予想される。

安教授はまた、我が国が日本の誠意ある過去清算を要求していることについて、過去よりも今後の 韓日関係をどうすべきかが重要だとして、「過去に被害にあった人でも、今自分にとって幸せな条件を過去に侵略した人が出してくれるのなら、それまで拒否する理由はないと思う」と述べた。

 安教授はこの日のインタビューで、慰安婦がいたことを否定する人はないとしながらも、「問題は強制動員だ。強制動員されたという一部の慰安婦経験者の証言はあるが、韓日とも客観的資料は一つもない」として、慰安婦動員の「自発性」を強調した。

 記録がないからといって強制性に対する評価を留保するのは間違いではないか、という司会者の質問に安教授は、「軍隊慰安婦や一般慰安婦の生活は悲惨きわまりない。私たちはそのことに目を閉ざしてはならない。韓国にも私娼窟という慰安婦が多数いるが、そうしたことを無くすためには、なぜそのような現象が発生するのかを研究せねばならない。無条件強制によってそうした現象が起きる、とは考えられない」などと、とんでもない返事をした。

 安教授は更に、慰安婦業者のうち半分は朝鮮員だったとして、「(当時)朝鮮員が何の権力で強制的に動員したというのか」と主張したりした。

 安教授はただ、軍が強制動員した可能性があると思って自分は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と共同 で調査をしたと明らかにしたうえで、「3年活動してからやめた理由は、彼ら(挺身隊対策協)の目的が慰安婦の本質を把握して今日の悲惨な慰安婦現象を防止することではなく、日本とケンカすることだったからだ」と主張した。そんな調子の反日運動が今日の私たちにとって何の意味があるのか、という疑問から挺身隊対策協との活動をやめたということだった。

 安教授はまた日帝時代の土地収奪問題について、「公然たる土地収奪はなかったようだ。当時、国有地は朝鮮王室の物だったが、これを朝鮮総督府の所有にした。掠奪と言えば掠奪だが、掠奪というより朝鮮王室の所有を国家の所有にしたものだ」と、当時の朝鮮総督府を国家と同一視する発言をしたりした。

 安教授はまた、韓日両国が善隣のパートナーになるには日本の謝罪が必要ではないかとの質問に対して、「それでは問題解決にならない。今後どんな関係を持てば我々の歴史的課題がうまく行くのか、を考えるべきだ」と答えた。

 安教授は更に、「過去の何が悪く何が正しかったを根掘り葉掘り調べても現実には全然役立たない。」として、「私たちが協力すれば国がうまく 行くのに、独島やら靖国やら何の解決の見込みがないことを持ち出して何年も始終ケンカばかりしている。こんなことをするなと言っているのだ」と表明した。





アンビョンジク”慰安婦強制動員はない”また妄言
MBCに抗議殺到...”日本に追放しろ!”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457
メディアトゥデイ(韓国語) 2006年12月7日

”日帝時代の公然たる土地収奪はなかった。”
”慰安婦強制動員したという客観的な資料は一つもない。”
”慰安婦の営業者の半分は朝鮮員だった。彼らがどんな権力を持っている動員したでしょうか。”
”今日私たちが幸せになれた基礎を過去に侵略した人がしてくれれば拒否しない。”

 このような話は日本学者らがしたのではない。 我が国代表的な学会要人という人がTV放送に出演して遠慮なくした話だ。

 アン・ビョンジク ニューライト財団理事長は6日MBC <ニュース現場> “ニュース焦点”コーナーに出演してファン・ホン アンカーとのインタビューでこのように話した。インタビューが進行される間ファン アンカーは当惑する表情を隠せなかったし、インタビューの後にはMBC製作スタッフに向かって視聴者たちの抗議電話が激しかった。
インタビュー後、MBCに抗議電話殺到
 MBC製作スタッフは”インタビュー以後数多くの抗議電話がかかってきた。製作スタッフに対する激励電話もあったが大部分は”そのような人がどのように歴史を指導するか” “どのようにそのような考えを持てるか” “最初から日本に送れ”という内容だった”と明らかにした。




李 栄薫(イ・ヨンフン、1951年9月10日 - )は大韓民国の経済史学者。ソウル大学経済学教授・落星台経済研究所所長。経済史学会会長・韓国古文書学会会長も務めていた。1985年に博士号を取得している。


 安秉直・李大根らと李氏朝鮮時代から現代にかけての韓国の経済史を研究している。特に植民地支配下の朝鮮経済の研究で知られ、「日本による植民地時代に韓国が土地と食糧を収奪されたという韓国史教科書の著述は歪曲されたものだ」という主張を提起し、「私たちが植民地時代について知っている韓国人の集団的記憶は多くの場合、作られたもので、教育されたものだ」としている。

 たびたび韓国では植民地支配を肯定する植民地近代化論者・新親日派だと批判されている。

 2004年9月2日文化放送の100分討論に出演して”従軍慰安婦が朝鮮総督府の強制動員でなく韓国人の自発的に参加でなされた 商業的公娼”という趣旨の発言をすることによって日帝植民統治を称賛して慰安婦おばあさんらを侮辱したという論議にまきこまれた。 この教授は”挺身隊関連日本資料を見れば犯罪行為は権力だけでなされたのではなく参加する多くの民間人らがいた”として”韓国女性たちを管理したことは韓国業者主人らでその名簿がある”と主張して従軍慰安婦問題を売春と同一視した。これにより教授職辞任を要求され、学会追放の運動がマスコミや反日勢力を中心に激しく巻き起こり、危機的状況に追い込まれたイ・ヨンフンは以後自身の主張が事実と違うと釈明しなければいけない事態となり、更にマスコミ公開で10分間も土下座をさせられ40分間も慰安婦おばあさんによる大声の罵倒を黙って聞かされた。


土下座させられるイ・ヨンフン教授

 2006年12月1日高校生用《韓国近現代史代案教科書》で4・19革命を《4・19学生運動》”で、5・16軍事政変を《5・16革命》”で記述して論議を呼び起こした《教科書フォーラム》のシンポジウムで4・19民主革命会、4・19革命功労者会、4・19革命犠牲者遺族会会員30人余りに暴行を受けた。この教科書は2008年3月24日内容を修正して出版した。この教科書はイ・ヨンフン以外にパク・ヒョジョンなどの教授が参加した。



暴行を受けるイ・ヨンフン教授


 2008年11月25日ソウル市教育庁の”現代史特講”で講師で配分されたが、”親日派論議が起きるとすぐに排除された。

2007年5月25日 大韓民国の話を出版した。小説アリランは捏造、日帝が土地を強奪したのは嘘だと書いてまたも強い批判を受ける。



한국 교수 「위안부 강제의 증거는 1개나 없다」

자세하게 조사했지만 일제의 토지 수탈은 없었다.
위안부의 강제 동원은, 아무리 조사해도 증거가 1개나 없는 이야기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77687
오 마이 뉴스(한국어) 2006년 12월 4일


안·볼지크소울 대학 명예 교수


 2일 오후에 마포구의 신보수주의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안병 곧 신보수주의 재단 이사장(70세, 서울 대학 명예 교수)은, 등산복차림이었다.지난 달 30일의 교과서 포럼(상임 대표:박효종)에 의한 대안 교과서 심포지엄에서 4·19 혁명 동지 회원등에 멱살을 잡힐 수 있다고 하는 모욕을 받았지만, 큰 부상은 없음 그랬다.야스 교수는 최초로 「물의를 빚어 국민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진실을 말하고 폭행을 받는 이·욘 분 교수


한국에서 진실을 말하고 폭행을 받는 안·볼지크 교수


 <중략>

 그러나 야스 교수는, 일제 식민 통치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하는 것으로, 한미 동맹에 의해서 한국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것, 박정희 군사 정권의 경제 노력에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표명했다.

 우선 야스 교수는, 교과서 포럼의 대안 교과서가 일제 강점을 정당화 한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주장과 닮아 있다라는 지적에 대해서, 「초안을 읽지 않으니까」라고 일축 했다.또,「일제 시대, 토지 수탈은 없었다」로서, 「친일파 「만드는 모임」과 생각이 같다, 라고 비판되어도, 나는(일제의 토지 수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받아 들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종군위안부의 기술을 떨어뜨리고 있다, 라든지, 항일 무장 독립 운동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라고 하는 비난에 대해서도, 「현재의 역사의 중심 축으로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또한, 「(일본 군대 위안부 문제 등을) 떨어뜨릴 수 없다」로서, 하등의 형태로 대안 교과서에 실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야스 교수는, 일본군위안부에 관해서 「모두 궁핍함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부모가 궁핍하지 않으면, 어째서 자신 의 딸(아가씨)를 팔거나 할까 보냐」라고 말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교수는, 「그런 사실(가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말고,「일본이 무조건·강제적으로 잡아 데려서 갔기 때문에 위안부가 되었다」라고 하지만 , 그런 이야기는 거짓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하는 야스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Q.<중략>「조선 총독부의 토지 수탈은 사실상 없었다」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같지만.

A.「일본의 「만드는 모임」이(스스로의 교과서로 토지 수탈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는 모른다.우리는 이미 1990년대에, 전국의 토지 조사 사업 문서를 거의 조사했다.토지 조사부, 분쟁지 서류, 토지 측량 관계서류, 지적도를 종합 검토한 결과, 「토지랭탈은 없었다」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객관적 결론이다.거기에 붙어 조금도 요동할 것은 없다.단지, 토지 수탈이 한 건이라도 없었는가 하는 (일)것은 모른다.」

<중략>

Q.현재의 위안부라고 하면 성 매매 여성인가.

A.「그렇다.뿌리는 어느쪽이나 같다.어느쪽이나 궁핍함으로부터 나온 것이다.부모가 궁핍하지 않으면, 어째서 자신의 딸(아가씨)를 팔거나 할까 보냐.」

<중략>

Q.성 매매와는 다른 문제가 아닌가?
 위안부 강제 동원이 있던 것 자체는 사실이라고 볼 수 것은 아닌가.

A.「실제, (일제 시대에) 강제 동원은 많이 있었다.남성의 경우는 징용이나 징병, 여성의 경우는 정신대가 강제 동원되었다.그러나 위안부에게 대해서, 강제를 했는지 어떠했는지는( 아직 객관적으로는) 모른다.강제했다고 하는 자료를, 일본과 한국의 어디에서도 냈던 적은 없다.위안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증언 뿐이다.사학을 하는 인간은, 증언을 가지고 역사적인 자료와는 하지 않는다.참조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이렇게 말한다고, 내가(위안부 강제 동원이 없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단지 자료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안병 곧 교수가 텔레비전 출연 … 「위안부 업자의 반은 조선원」 「일본에 사죄만 요구해 무엇이 될까」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52265(삭제가 끝난 상태)
데일리 소프(한국어) 2006년 12월 6일


■교과서 포럼의 안병 곧, 「위안부는 자발적」망언으로 파문

 최근 「4.19 학생 운동, 5.16혁명」파문을 일으켜 걸친 교과서 포럼의 여파가 아직도 완전히 식지 않은 안, 신보수주의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안병 곧(안·볼지크) 서울대명예 교수가 6일의 MBC TV 「뉴스 초점」에 출연하고, 일제 시대의 위안부 강제 동원의 증거는 없고 토지 수탈도 없었다고 언명 하고, 다시 파문이 예상된다.

야스 교수는 또, 우리 나라가 일본의 성의있는 과거 청산을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과거보다 향후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하고,「과거에 피해를 당한 사람이라도, 지금 자신에게 있어서 행복한 조건을 과거에 침략한 사람이 내 준다면, 그것까지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야스 교수는 이 날의 인터뷰로, 위안부가 있던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면서도, 「문제는 강제 동원이다.강제 동원되었다고 하는 일부의 위안부 경험자의 증언은 있다가, 한일이라고도 객관적 자료는 하나도 없다」로서, 위안부 동원의 「자발성」을 강조했다.

 기록이 없다고 강제성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는 것은 실수가 아닌지, 라고 하는 사회자의 질문에 야스 교수는, 「군대 위안부나 일반 위안부의 생활은 비참 한이 없다.우리는 그것에 눈을 닫아서는 안 된다.한국에도 사창굴이라고 하는 위안부가 다수 있지만, 그러한 일을 잃기 위해서는, 왜 그러한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연구키안 된다.무조건 강제에 의해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와는 생각할 수 없다」 등과터무니 없는 대답을 했다.

 야스 교수는 더욱, 위안부 업자 중 반은 조선원이었다고 하고, 「(당시 ) 조선원이 무슨 권력으로 강제적으로 동원했다는 것인가」라고 주장하거나 했다.

 야스 교수는 단지, 군이 강제 동원한 가능성이 있다라고 생각해 자신은 한국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와 공동으로 조사를 했다고 분명히 한 데다가,「3년 활동하고 나서 그만둔 이유는, 그들(정신대 대책협)의 목적이 위안부의 본질을 파악해 오늘의 비참한 위안부 현상을 방지하는 것은 아니고, 일본과 싸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그런 상태의 반일 운동이 오늘의 우리에게 있어서 무슨 의미가 있다 의 것인지, 라고 하는 의문으로부터 정신대 대책협과의 활동을 그만두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야스 교수는 또 일제 시대의 토지 수탈 문제에 대해서,「공연인 토지 수탈은 없었던 것 같다.당시 , 국유지는 조선 왕실의 물건이었지만, 이것을 조선 총독부의 소유로 했다.랭탈이라고 하면 랭탈이지만, 랭탈이라고 하는 것보다 조선 왕실의 소유를 국가의 소유로 한 것이다」라고, 당시의 조선 총독부를 국가와 동일시 하는 발언을 하거나 했다.

 야스 교수는 또,한일 양국이 선린의 파트너가 되려면 일본의 사죄가 필요하지 않은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러면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향후 어떤 관계를 가지면 우리의 역사적 과제가 잘 되가는지, 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야스 교수는 더욱, 「과거의 무엇이 나쁘게 무엇이 올발랐다를 꼬치꼬치 조사해도 현실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로서, 「우리가 협력하면 나라가 잘 되가는데,독도든지 야스쿠니든지 무슨 해결의 전망이 없는 것을 꺼내 몇 년도 언제나 싸움만 하고 있다.이런 일을 하지 말아라 라고 한다 」(이)라고 표명했다.





안볼지크"위안부 강제 동원은 없는"또 망언
MBC에 항의 쇄도..."일본에 추방해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457
미디어 오늘(한국어) 2006년 12월 7일

"일제 시대의 공연인 토지 수탈은 없었다."
"위안부 강제 동원했다고 하는 객관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다."
"위안부의 영업자의 반은 조선원이었다.그들이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는 동원했는지요."
"오늘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었던 기초를 과거에 침략한 사람이 해 주면 거부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야기는 일본 학자들이 한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 대표적인 학회 요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TV방송에 출연해 사양말고 한 이야기다.

 안·볼지크뉴라이트 재단 이사장은 6일 MBC <뉴스 현장> "뉴스 초점"코너에 출연해 팬·폰 엥커와의 인터뷰로 이와 같이 이야기했다.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환 엥커는 당혹해 하는 표정을 숨길 수 없었고,인터뷰의 뒤에는 MBC 제작 스탭을 향해 시청자들의 항의 전화가 격렬했다.
인터뷰 후, MBC에 항의 전화 쇄도
 MBC 제작 스탭은"인터뷰 이후 수많은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제작 스탭에 대한 격려 전화도 있었지만 대부분은"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역사를 지도할까" "어떻게 그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최초부터 일본에 보내라"라고 하는 내용이었다"와 분명히 했다.




이 사카에훈(이·욘 분, 1951년 9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경제 사학자.서울 대학 경제학 교수·락성대 경제 연구소 소장.경제 사학회 회장·한국 고문서 학회 회장도 맡고 있었다.1985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있다.


 안병 곧·이무등과 이씨 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걸친 한국의 경제사를 연구하고 있다.특히 식민지 지배하의 조선 경제의 연구로 알려져「일본에 의한 식민지 시대에 한국이 토지와 식량을 수탈 되었다고 하는 한국사 교과서의 저술은 왜곡된 것이다」라고 하는 주장을 제기해,「우리가 식민지 시대에 대해서 알고 있는 한국인의 집단적 기억은 많은 경우, 만들어진 것으로, 교육된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가끔 한국에서는 식민지 지배를 긍정하는 식민지 근대화 논자· 신친일파라고 비판되고 있다.

 2004년 9월 2 일문화 방송의 100분 토론에 출연해"종군위안부가 조선 총독부의 강제 동원이 아니고 한국인의 자발적으로 참가 (로) 이루어진 상업적 공창"이라고 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것에 의해 일제 식민 통치를 칭찬해 위안부 할머니등을 모욕했다고 하는 논의에 휩쓸렸다.이 교수는"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범죄 행위는 권력만 (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게 참가하는 많은 민간인등이 있었다"로서"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 업자 주인등으로 그 명부가 있다"라고 주장해 종군위안부 문제를 매춘과 동일시 했다.이것에 의해 교수직 사임이 요구되어 학회 추방의 운동이 매스컴이나 반일 세력을 중심으로 격렬하게 일어나, 위기적 상황에 몰린 이·욘 분은 이후 자신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태가 되어, 더욱 매스컴 공개로 10분간이나 땅에 엎드려 조아림을 하게 해 40분간이나 위안부 할머니에 의한 큰 소리의 매도를 입다물고 들었다.


땅에 엎드려 조아림 당하는 이·욘 분 교수

 2006년 12월 1 히다카교생용《한국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로 4·19 혁명을《4·19 학생 운동》"로, 5·16 군사 정변을《5·16 혁명》"로 기술하고 논의를 불러일으킨《교과서 포럼》의 심포지엄에서 4·19 민주 혁명회, 4·19 혁명 공로자회, 4·19 혁명 희생자 유족회 회원 30명 남짓에 폭행을 받았다.이 교과서는 2008년 3월 24 히나이용을 수정해 출판했다.이 교과서는 이·욘 분 이외에 박·효젼등의 교수가 참가했다.



폭행을 받는 이·욘 분 교수


 2008년 11월 25 일소 울시 교육청의"현대사 특강"으로 강사로 배분되었지만,"친일파 논의가 일어나자마자 배제되었다.

2007년 5월 25일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출판했다.소설 아리랑은 날조, 일제가 토지를 강탈한 것은 거짓말이라고 써 다시 또 강한 비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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